6월20일 박종태 열사는 부인과 어린 두 자녀를 남기고 망월동에 묻혔다. 열사의 죽음이후 대한통운 금호그룹의 노동자탄압, 해고자문제, 운임료인상 등을 비롯하여 많은 문제가 도출되었지만 진작 그 죽음의 본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지금까지 정부와 자본은 특수고용 노동자들(화물, 레미콘, 보험모집인, 퀵서비스, 택배종사자,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간병인, 각종A/S종사자, 텔레마케터 등)에 대하여 그 노동자성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겉으로는 사업주이나 실상은 노동과정과 형태에 있어서 실사용자에 종속된 노동자다. 사용자에게는 일반 노동자와 똑같은 감독권과 종속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윤을 획득하고, 법제도상의 사용자의 의무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가는 왜곡된 고용형태인 것이다. 특히 98년 경제위기 이후 사용자의 비용 절감과 사회적 책무를 회피하기 위해 양산되어 현재 180만 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박종태 열사의 죽음을 가져왔던 대한통운의 경우는 어떠한가.
1995년 대한통운의 택배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배달을 하는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러나 97년 이후 택배 배달 차량을 구입하고 사업자 등록을 하도록 요구하고 그렇게 하여 위탁계약서를 체결하도록 했다. 이렇게 특수고용 노동자로 강제 전환된 것이다. 택배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이 박탈되었고 하루아침에 해고가 되어도 해고를 해고라 부르지 못하고 계약해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용자는 노동법상 아무런 책임도 없고 노동자는 유류비, 운송차량, 유지비, 구입비, 보험 등을 스스로 책임지게 된 것이다. 업무상 재해도 당연히 인정 못 받게 되는 것이다.
바로 노동기본권이 박탈된 특수고용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박종태열사의 죽음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없기 때문에 대한통운 자본들이 이들을 탄압하고, 계약해지하고, 무시하고 짓밟은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라는 요구에 돌아오는 것은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니 그 어떠한 요구와 교섭을 인정 해줄 수 없다. 우리말을 안 들으면 밥줄 끊겠으니 알아서 해라.’였다. 이들에게는 죽든지, 굶든지, 떠나든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인정되지 않으면 현장부딪침 속에서 밟히는 쓰러지고 깨지는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앞에서 박종태 열사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절규하였다. 하지만 열사의 죽음 앞에서도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성 인정은 고사하고 합의문에 ‘화물연대’라는 글자 자체를 넣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바로 우리의 힘을 보고 양보해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아니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박종태 열사 투쟁은 끝났다. 이제 아쉬움이 남지 않게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의 문제로 보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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