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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호 NO.4|0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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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호 NO.4|04|2002
마침내 합법화 투쟁의 닻이 올랐다

:: 2002-04-09   조회: 2487

3월 25일부터 5월 25일 두 달 동안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자 자진신고기간'을 운영한다. 이것은 '불법체류자 자진출국유도기간'과 다른 조치로 지난 1992년과 1993년에 이미 네 차례 시행된 적 있는 "조건부 사면"조치다. 이 기간에 초과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법무부에 자신의 신분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주고 사장들은 1년 동안 이들을 고용한 뒤 반드시 출국까지 책임져야 한다. 신고할 때 제출하도록 한 양식을 보면, 사진은 물론 신고하는 날로부터 정확히 일년 뒤 날짜가 박힌 비행기표를 보여주어야 하며 "출국보장각서"라 하여 사장이 다음해 몇 월 몇 일까지 꼭 출국시키겠다고 도장을 지르고 "체류, 보호 또는 출국과 관련하여 발생되는 비용에 대한 지불책임을 부담"할 것을 서약해야 한다.

이 조치가 발표되기 전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노동자들을 위한 사면으로 생각했다. 법무부가 만든 영문으로 된 Q&A에도 분명히 이 일년이 "출국준비기간"임을 밝히고 있는데도 잠시나마 단속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으로 추방정책이 본질임을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속내는 무엇인가?

노동자들을 보라고 만든 Q&A를 보자. 우선 배경에 대해 불법체류자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2002년 1월 현재 불법체류자는 26만명이며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을 거치면서 이 숫자를 훨씬 웃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불법체류자 숫자를 줄이기 위해" "자발적인 출국" 전에 신고만 하면 몇 가지 "은혜"(grace)를 베풀겠다고 한다. 실제로 정부는 월드컵을 보러왔다가 불법체류할 이주노동자 숫자가 어마어마할 것을 고심하고 있으나 이를 막을 재간은 없다. 단체비자 발급이니 월드컵 티켓실명제를 도입해 막아보겠다고 하고있으나 이 방법도 실효성이 없다.

이제 더없이 곤란해진 한국 정부는 팔을 걷어붙이고 이 문제를 풀겠다는 시늉을 하고 있다. 대규모로 이주노동자들을 이 땅에서 내쫓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계약한 1년이 다하면 한국에서 나가겠다는 출국동의서 접수광고이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실직고하지 않은 노동자에 대해서는 신고기간이 끝나는 5월 26일부터 전에 없던 강력한 단속을 통해 추방하겠다는 협박의 방이 공단과 지하철 그리고 대로변 담벼락에 나붙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받아들인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사장과 함께 신고한 뒤에는 다른 공장으로 절대 옮길 수 없다. 출국을 보장한다는 각서를 쓴 사장은 노동자가 사업장을 이탈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1년 뒤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되어 공장 문을 닫게 되는 건 1년 뒤에 일어날 일이라고 치고, 1년 동안이라도 신나게 부려먹자 마음먹은 사장이 있다고 하자. 공장의 일이나 대우 그리고 임금과 노동시간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조건이 있어도 꼼짝없이 잡힌 신세가 된 노동자들은 많아진 오버타임과 특근에 시달리고 심지어 감금을 당한 채 강제노동을 할 수 있다. 임금을 턱없이 낮게 받거나 떼인 상태에서 일할 수도 있다. 정해진 공장에 발목이 묶여버린 다음에는 소위 인권침해는 말할 것도 없이 늘어나고 더욱 악랄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사업장이 부도 등의 이유로 없어지면 노동자는 구제도 받지 못하고 곧바로 출국해야 한다. 여기서 이주노동자들은 처분당하기 전에 잠시 보관되는 물건에 지나지 않으며 더 이상 맡길 곳이 없으면 즉시 폐기되는 쓰레기 취급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다. 당장 5월 26일부터 몰아치는 단속추방은 신고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극심한 불안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이들을 고용한 사장들은 평소처럼 출입국을 팔아 마음놓고 착취하는 일에 골몰할 것이 자명하다.

이제 불법체류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더없이 뚜렷하다. 더불어 향후 고용법 입안을 둘러싼 외국인력정책은 어디로 갈 것인가 또한 뚜렷해지고 있다. 노동부는 올해 6월까지 '외국인근로자 고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할 계획인데 규모는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1~1.5%(20만~30만명)수준에서 억제할 방침"이라고 한다. 아직 이 법률안의 골자가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한국어 시험, 적성검사"등을 기준으로 지금 체류하고 있는 미등록노동자들이 부분적으로 포함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제도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번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서 연수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노골적으로 드러낸 중국동포 우대책의 일환일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이번 자진신고조치는 불법체류자를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불법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새로 들여 고용법에 종속시키기 위한 사전포석이다. 하여 지난 2000년에 발표된 고용법 안이 얼마나 많은 독소조항으로 얼룩져 있는가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이 사실에 주목하고 분노한다. 가난과 실업으로 이 곳까지 떠밀려 와 일을 해야 했고 죽어도 하기 싫은 불법체류자로 살기를 강요당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의 목에 날 선 칼을 들이대며 좋은 말할 때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질질 끌려 쫓겨나겠는가 오직 두 가지 선택지 뿐이라는 것. 그것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모두 죽으라는 이야기라는 것.

지난 3월 10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는 조합원총회를 통해 굳게 결의한 것이 하나 있다. 단계적 추방정책인 자진신고를 전면거부하고 불법체류 미등록노동자의 체류자격 사면과 합법화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일제조사기간으로 설정된 3월 25일부터 5월 25일을 '이주노동자 합법적 노동권 쟁취를 위한 집중 투쟁기간'으로 상정하여 이주노동자 대중을 만나서 알려내고 조직하여 한국 정부의 이따위 "은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의 저항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이 투쟁은 단지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한 거부와 고용법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노동비자 쟁취와 체류자격 합법화를 기치로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를 분명히 하는 싸움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고용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통제하는 룰 자체를 환영할 수 없다. 그것은 자본가와 (자본가)정권이 하는 일이며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가 합법으로 일하고 살게 하라는 것과 함께 우리가 외칠 것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노동관계법 완전적용, 노동 3권 완전보장과 같은 요구이다.

2001년 3월 스페인에서는 정부가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사장들이 그들을 고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국적을 떠나 등록되지 않은(undocumented) 노동자의 처지로 모여 투쟁을 만들었다. 대규모로 조직된 이주노동자들은 각국 언어로 쓴 "비자(document)를 내놓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마침내 스페인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노동자들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2002년 3월 한국에서 우리는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투쟁의 바톤을 이어받으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싸움에 차이를 뛰어넘어 한국의 많은 노동자 동지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투쟁!
송수진 |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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