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사회화되거나 해결되는 데에 노사정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사안을 왜곡시켰는지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목표이다. 그것의 결론은 이제 개악된 노동법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차별시정위원회’나 ‘시행령 개입’ 등의 논의가 어떻게 노사정위원회와 연결되어 있는지, 그것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1. 노무현 정권에서 노사정위원회의 성격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죽어나가고, 실업자가 되고, 삶이 피폐해지며, 참여복지정책으로 인해서 복지혜택도 주어지지 않은 채, 삶의 고통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으로만 간주된다. 경쟁에서 밀린 자신의 잘못으로 간주하도록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민중을 고통에 처하게 만드는 정책인 것이다. 이런 고통에 처한 민중들의 불안을 다른 곳으로 돌린 것이 바로 ‘대공장 이데올로기’였다. 노무현 정권은 대공장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고통스러운 민중들의 불만의 대상을 왜곡시키고, 노동조합의 투쟁력을 와해시키고 고립되도록 만들어 스스로 정권에 굴복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란 노동조합을 한축으로는 다른 민중들과 정권의 공격의 대상으로 만들고, 스스로 투쟁할 힘을 갖지 못해서 정권에 굴복한 후, 노동자와 민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도록 주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노동운동 진영의 무력화와 관리역할로의 전락을 전제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공격은 민주노총에 대한 배제와 폭력탄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력공세를 통해 민주노조 내부의 협조주의 세력들이 힘을 갖게 하고, 민주노총 내부의 갈등을 일으켜 정부에 협조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나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을 끼워넣으려는 것은 민주노총의 투쟁을 막기 위해서이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들을 앞세우고 민주노총을 들러리 세울 때가 더 많다. 정부가 노리는 것은 실제 ‘협의’가 아니라 ‘협의의 외형’을 띤 관리이기 때문이다.
2. 노사정위원회가 해왔던 일들
1998년 1기 노사정위원회가 발족한 이후 노사정위원회에서 다뤘던 의제들의 귀결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민주노총은 1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고용조정법제 정비 방안과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 가입자격 인정, 교원노조 허용 등 90개 추진과제를 설정하는 데에 합의했으나, 정부에서는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았고, 2월 9일 대의원대회에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에 합의한 노사정합의안을 부결시키면서 결국 1기 지도부는 총사퇴하였다.
그러나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는 국회를 통과했고 실업자 노조가입자격 문제 처리는 불이행되었다.
2기 노사정위원회는 98년 6월 3일에 출범했고, 민주노총은 6월 10일 대의원대회에서 전술적 활용 차원에서 참여를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구조조정 정책을 계속 발표했다. 결국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를 내걸며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가 7월에 복귀를 했다. 하지만 실업자노조 가입자격 문제 등이 법무부의 반대로 백지화되고 이갑용 위원장이 노사정합의 이행촉구 국회 앞 단식농성도 했지만 99년 2월에 탈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2000년에 와서는 ‘주5일제’에 대해 협의를 하자면서 노사정위원회에 ‘근로시간 단축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으나 결국 한국노총만 참여를 했고, 이 속에서 주5일제에 대한 개악안이 통과되었다. 노사정위원회는 공익위원안을 내놓으면서 초과노동한도를 늘리고 4시간에 대한 할증률을 낮추고 휴가일수의 대폭 축소나 변형근로 도입 등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향시킨 상태로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민주노총은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고, 통과된 이후 ‘단협’으로 막자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막을 수 없어서 노동조건이 후퇴했다.
2003년 5월 노무현은 ‘정부가 청와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노사문화의 틀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강행처리되었고, 한국노총은 2003년 10월에 로드맵 논의 참여를 결정하면서 결국 노사정위원회는 다시 힘을 받게 되었다.
민주노총은 2004년 선거에서 이수호 후보가 당선된 이후 ‘대화’와 ‘사회개혁투쟁’을 주장하였다. 2월에 노사정위원회는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발표했는데 “기업은 투자를 통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자제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노조는 생산성 향상에 적극 협력하고 향후 2년간 임금안정에 협력하며, 정부는 일자리 만들기를 정부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양산을 위해 정규직이 양보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은 정규직 책임론과 신자유주의 유연화 정책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그 이후 5월 31일 노사정 토론회 이후 양대 노총, 경총과 대한상의, 노동부장관과 노사정위원장 6명으로 구성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탄생한다. 이것은 노사정위원회 복귀에 관한 민주노총의 부담을 덜면서도 회의체에 민주노총을 결합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었으며, 6월 4일 1차 회의를 통해 ‘노사정위 개편 방안’을 의제로 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탄압은 지속되었고, 이수호 집행부에서는 이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유보’한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그리고 9월에 정부에서는 비정규 관련 법안을 일방적으로 제출했다.
2005년 사회적 교섭안을 둘러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논란으로 노사정위원회 참여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대해 이수호 위원장이 직권으로 추진의사를 확정했고, 결국은 4월에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되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비정규법안’을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비정규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사정협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비정규법안은 계속 논란을 벌이며 유보되었고, 그 사이에도 울산플랜트나 하이닉스매그나칩 등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다.
민주노총은 2005년 11월 대표자회의 이후에 불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다시 3월에 복귀를 결정하면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비정규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논의하겠다고 하였다. 민주노총에서는 2006년 5월에 ‘노사관계로드맵과 특수고용 노동3권의 보장을 위해서 참여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계속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9월 11일에 정부 및 경총과 일방적으로 노사관계로드맵에 야합을 했다. 민주노총은 9월 19일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용도 폐기를 선언하고,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법 개악안은 11월 말에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2007년 3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민주노총에 복귀를 요청하고 있고,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각급 장관들을 만나고 있는 상태이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불참을 반복했지만 사실상 상처 뿐이다. 정부는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자들에 대한 엄청난 탄압을 계속하거나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계속해왔고, 논의 와중에도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자신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거나 혹은 관철되지 않을 때에는 노사정위원회를 무시하고 다른 구조로 안을 내거나 아니면 한국노총을 파트너 삼아 민주노총을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해왔다. 결국 노사정위원회의 그 수많은 의제들은 모두 자본과 정권의 의도대로 관철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관철된 내용은 모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거나 더욱 해악적으로 만드는 내용들이었다.
3. 노사정위원회에서 나타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왜곡
(1) 주고 받기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 달리하기
2003년까지 진행된 합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정규직 노동자, 조직된 노동자의 일정한 이익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통해서 중간착취를 합법화했다. 이것은 전교조 합법화와 공무원 단결권 보장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그런데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는 즉각 허용되어 많은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준 반면 전교조 합법화와 공무원 단결권 보장은 실현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0년 복수노조 금지조항의 유예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를 맞바꾸기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노조 건설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2001년 모성보호법 개정 과정에서는 여성노동자 중 고용보험에 들어있는 4%의 여성에게만 한정되는 혜택 대신 대부분의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이 소외된 채 여성 야간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규정이 사라져버렸다.
2003년 주5일제와 연동된 근로기준법 개악과정은 분명하게 조직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과 미조직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 악화를 맞바꾼 것이었다. 주5일제가 개악 통과된 후 민주노총은 ‘단협’으로 막아내자고 주장했으나, 법안이 통과된 이후 단협으로 노동조건 저하를 막아낼 수 없는 비정규·중소 영세 노동자들에게 노동조건 악화의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갔다.
(2) 비정규직을 약자로 간주하는 대리주의의 만연 - 비정규직을 위해서?
2004년에 들어와서부터는 사회적 합의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자, 정부에서는 정규직을 압박하면서 ‘책임론’을 주장하고 이제 사회적 합의는 서로가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을 가지려고 했다.
노사정위원회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경우에도 최저임금투쟁은 최저임금의 결정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요했다. 최저임금위원회라는 노사정합의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최저임금이 저임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라는 기준을 제기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배치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스스로의 결정기준을 뒤엎고 임금 인상식 합의의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지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어처구니 없게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2006년 6월에 노동자들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하겠다고 한 명분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였다. 그들은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대표자회의에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것을 관철시켰다. 그와 동시에 노동법 개악안에 대한 재수정안이 이야기되었고, 특수고용 특위에서는 더 이상 논의할 것 없이 정부와 공익위원들의 논리만 되풀이되었다.
비정규직을 약자로 간주하면서 누군가가 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로 정부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이다. 2004년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서 의제로 설정한 ‘노사정위원회 재편방안’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 이야기되어왔던 ‘경제사회위원회’와 같은 구조를 오히려 강화하는 바, 이것은 기업과 민주노총을 기득권층의 한 파트로 놓고,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하며 오히려 여성, 실업자, 노인,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시민단체류가 한 파트를 담당하는 형식으로 만들려고 한다. 즉 불안정노동자들의 대표성을 민주노총에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자로 상정하고 시민단체들이 대표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2005년도에 만들어진 ‘2005 희망제안’과 같은 것은 그 시도였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투쟁해야 할 주체들이다.
(3) 문제해결을 위한 틀로서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 문제가 너무나 힘들게 진행되면서 지역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많았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 혹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로서 장기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이 요구되는 경우도 많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서가 아니라 지역노사정위원회라는 틀을 활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대표성이나 투쟁성이 ‘합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방식이었다. 하이닉스에서도 이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오히려 ‘사회적 일자리’로의 전환 등이 이야기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하이스코에서도 이 방식을 통한 해결이 제기되었으나 자본은 합의사항을 뒤엎어서 결국 노동자들이 다시 투쟁함을 통해서 왜곡된 합의사항이지만 다시 지키도록 강제해야 했다.
자본은 끝까지 버텨서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만약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자본에게 강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 압력이 필요하다면 정부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등을 처벌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면 된다. 그런데 노동부에서는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평소에 그런 역할을 하지 않다가 노사정위원회라는 틀을 만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설령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그 때에는 투쟁의 힘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못해서 지쳤을 때 중재의 방식으로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방식일 때가 많다.
(4) 비정치적인 내용이라고 강변하는, 대단히 정치적인 신자유주의적 협약들
2004년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보면 2월 10일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의 이름으로 확정되었는데, 노동계는 임금안정과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는 대신 일자리를 많이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일자리라는 것은 결국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는 것이었고, 노동자들끼리 고통을 분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부의 ‘정규직 책임론’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고, 비정규직을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민주노총은 2006년 6월 20일에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에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언론은 일제히 사회적 현안의 해결을 위해 합의와 대화에 나서는 노동계를 칭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이 사회적 협약이 ‘노사정위원회’와 같이 정치적 성격을 갖지 않은, 공동의 사회적인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나가는 데에 협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순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순진한 노동자들을 속이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이 협약은 절대로 ‘비정치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본의 신자유주의 유연화 전략을 위한 다양한 포석 중에 하나였다. 즉 불안정노동을 양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여성노동력 활용과 고령자 활용의 장유로운 사용을 보장하자고 주장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협약에 담겨있는 ‘보육의 공공성, 여성고용 확대와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일·가정 양립 지원’이라는 말은 여성에게 적합한 탄력근로제 도입, 파트타임 일자리 확산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를 빙자한 비정규직의 전면화계획으로 이어졌다. 노사 공동으로 고령자 일자리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에 사실상 합의한 셈이 되었고, 정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연금 개악을 하려고 하는데 연석회의 참여 단체들은 연금개혁에 대해 협의하자고 했다. 결국 이 협약은 값싸고 대체 가능한 여성노동인력, 고령인구 노동인력을 자본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4. 노동법 개악안 저지투쟁에서의 왜곡과 혼란
정부와의 대화나 합의는 일단 해 보고, 안되면 그만 두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참가는 그것이 갖는 장기적 효과, 결과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이 당장의 실익을 가져다주는가 아닌가가 핵심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법 개악 과정에서 나타난 노사정협의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노동운동 내부를 흔들고 자본의 노동법 개악 논리를 합리화해주었다는 점에서 위험을 갖고 있었다.
(1) 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비정규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나?
비정규직 투쟁이 확산된 2000년 이후 정부는 98년에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통과시킨 제도화를 온전하게 만들고자 했다. 2000년 10월 4일 비전형근로자 보호대책을 만들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제도화하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2000년에 이 내용을 바로 입법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사정위원회 안에 비정규특위를 만들어서 노동자들과 함께 논의를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002년에 들어와서 비정규특위에서 비정규노동자의 범위와 통계 개선, 취약노동자 개념 도입, 노사정 참여기구 설치, 상담 및 고충처리 방안, 사회보험 제도의 부분적용 등이 노사정 합의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미 공익위원의 이름으로 짜맞춰진 논의에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노사정위원회를 활용한 것은 민주노총을 끌어들여서 96·97년 파업투쟁 때처럼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불참을 반복하고, 노사정위원회 비정규특위에서의 논의가 사실상 정부의 법안을 되풀이 하는 것 이상 아무 것도 아닌 상태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2004년부터 거세게 ‘귀족노조 이데올로기’를 유포했고 비정규직 보호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비정규‘양산’법안을 비정규‘보호’법안으로 둔갑시키면서 어느 정도 투쟁을 봉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노동법 개악안을 2004년 9월에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의 열린우리당 점거 농성 등으로 이것이 노동법 개악안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되면서 민주노총은 파업투쟁을 결의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노동법 개악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누리지 못한 정부로서는 전선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협상 카드를 내밀었던 것이고, 국회 환노위 안에서 노사정협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때 민주노총이 조금 더 밀어붙일 수 있었다면 전선의 주도력은 민주노총이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섭으로 후퇴하는 순간 공동투쟁의 전선은 와해되고, 한국노총이 수정안을 내고 여기에 여성단체 등이 함께하면서 오히려 민주노총을 압박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자본과 정권은 절대로 자신들의 기본 틀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 안에서 협상의 여지는 매우 좁아져 있었고, 좁아진 입지에서라도 협상을 계속 하려면 대폭 수정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수정안은 사실상 건질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투쟁의 명분마저 빼앗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즉 누구를 비정규직으로 해야 할 것인지를 노동계가 선정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사정협상의 틀이 정부와 자본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진영의 단결만을 흔들고 결국 투쟁을 왜곡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노사정협의틀의 안정적 유지는 어차피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틀은 매우 반동적이었던 것이다.
(2) 투쟁할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노사정협의틀에 대해서 비판적인 비정규직들조차도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리 투쟁해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노사정위원회 등의 협의틀이 현실을 왜곡할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 말고는 기댈 것이 없으니 여기에라도 기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개악을 저지할 힘이 없으니, 다만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협상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이 비정규직에게 큰 힘을 발휘하는 논리이다.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과정에서 ‘매일노동뉴스’에서 연재한 내용을 보면, “투쟁할 힘도 없었으면서 원칙만 내세우고 협상에 제대로 응하지 않아서 결국 이것도 저것도 다 놓쳤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개악을 저지할 힘이 없으므로 협상에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막았어야 하는 것일까? 이 말은 말 자체로도 모순이다. 일단 개악을 저지할 힘이 없으면 당연히 협상장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결국 투쟁의 힘이 없을 때의 협상은 몇몇 상층의 협상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나 정부의 자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이 그러했다.
물론 협상에 나가면 자본과 정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민주노총 등의 이야기를 듣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근원적 요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수용하고 투쟁을 접으라는 것이다. 이 항복 선언의 대가로 몇 가지가 주어진들, 그것은 현실에서는 의미 없는 것이 되기 쉽다. 우리는 투쟁에서 자주 패배한다. 힘이 없고 지금처럼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갈기갈기 찢어진 상황에서 투쟁을 통해서 승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더 현실 논리에 빠진다. 하지만 이런 현실논리는 마지막에는 결국 저항할 힘마저 빼앗아가 버린다. 저항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자신들의 요구에 따를 때에만 협상을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시행령에 개입하자는 현실 논리들
이런 논리는 노동법 개악 이후 ‘차별시정’이나 ‘시행령 개입’을 논의하는 논리에서도 나타난다. 이미 노동법 개악안은 통과되었고 비록 재개정 투쟁을 선언하기는 했으나 이미 현실에서는 시행령을 중심으로 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여기에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특히 차별시정과 같은 구조는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므로 일단 차별시정위원회에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무런 무리 없이 등장하고 있다. 노동법 재개정 투쟁과 모순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원칙은 원칙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한국노총은 시행령 개입을 선언한 상태이고, 자본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행령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시행령에 대한 개입은 단지 유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정치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시행령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인정해면서, 투쟁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혹여 시행령에 우리의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아도 문제거니와, 설령 몇 가지 부분에서 반영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효과는 현장에서는 전혀 엉뚱하게 나타난다.
정부에서는 세 가지 부분에서 민주노총과 논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파견과 도급의 기준, 기간제 예외조항, 그리고 파견허용업무 선정이다. 파견과 도급의 기준은 아무리 정확하게 명시한다 해도 자본에게 그것을 피해갈 길을 알려주는 효과 이외에는 없다. 엄격하게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명시해도, 현실에서 불법파견 인정을 받게 만드는 것은 어렵기에 실효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간제 예외조항의 경우 모법인 기간제 자체가 노동자들을 2년마다 계약해지 하는 것인데, 그 예외조항이 문제라고 주장할 것인가? 또한 파견허용업무 선정의 경우 민주노조운동이 개입하게 되면 98년 파견법 통과 당시에 조직되지 않고 투쟁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만을 파견허용 업무로 내모는 일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5. 노사정위원회 참여는 ‘전술적 판단’이 아니라 노동자의 투쟁을 흐리는 ‘노선’이다
노조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협상의 테이블을 활용한다. 때로는 노사정이 모이는 것일 수도 있고, 노와 정이 협상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산별교섭도 노동자와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협상을 하는 테이블이다. 우리는 이런 교섭의 공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최근의 노사정위원회 혹은 노사정협의테이블의 경우는 단지 협상의 공간을 만든다는 전술적 의미 이상의 것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위원회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고 표현된, 노동운동 상층이 현장의 투쟁을 관리 통제하는 것을 전제로 한 주고받기식 상층교섭 테이블의 구조화이며 정권과 자본이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관철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계속 민주노총 일부에서는 노사정위원회, 혹은 노사정 협의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장 내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으면서도 끝까지 관철을 시키려고 애를 썼다. 왜 그랬을까? 현실에서는 하나도 얻은 것이 없고, 오히려 정부와 자본의 의도만 관철시켜주었을 뿐인데도 왜 이렇게 노사정협의 틀에 매달리는 것인가? 그것은 현재 노동조합운동의 나아갈 바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참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것을 활용하고자 하는 노조운동의 방향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은 지금 산별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산별시대에 걸맞는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면서 업종별 노사정협의회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도 각 부처 장관들을 만나면서 업종별 노사정협의회를 적극 권장한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노사정 협의 테이블을 구성하고 여기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아보자는 의미이다. 이 때 공동의 이해관계라는 것이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동의하고 생산성 향상에 협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몇 가지 요구를 관철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본의 산업정책에 대한 협력을 전제로 하여 관철되는 요구들은 때로는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이해관계를 대표할 수도 있고, 때로는 몇 가지의 정치적 권리와 현장의 고통 증대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산별노조 체제 아래에서 협상의 룰을 만들고, 상층의 정치력을 강화하는 노사정협의의 틀은 필연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관철에 대한 동의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노총 일부에서는 지금까지의 민주노조운동이 기업단위의 이해관계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것이 한계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그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사회연대전략’이라는 것으로 표현되고, 지역단위에서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지역이 생산과 재생산의 공간이므로 지역 수준의 이해관계 및 갈등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김금수 노사정위원장도 지역 노사정위원회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대구지역과 부천지역 등을 선정하여 노사정위원회의 안정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특히 미국 위스콘신의 업종별 노사정 협의모델도 노동시장 정책과 관련하여 지역 차원의 숙련 향상 프로그램, 업종별 숙련기준 마련, 중소기업과 협력체계 모색 등을 노조가 주도하여 성공한 사례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런 사례를 한국에서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대구 지역노사정위원회의 경우 ‘세계적인 패션 도시로서의 지역 개발’이라는 논리를 전제로 해서 오히려 민주노총의 협력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지역 노사정협의회의 경우 기능과 역할은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고용안정 등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방안, 실업극복을 위한 현안문제 해결 방안, 경제주체가 담당해야 할 역할과 사명 등 사회협약에 관한 방안’ 등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이 형식적인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의 전제가 지역 경제의 활성화라는 점에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시장의 경우에도 노동조합이 개입하여 통제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실질적 논의가 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즉 지역 노사정협의회는 신자유주의가 극단에 이름으로써 노동자들의 고통이 극에 달할 때, 그것을 지역 노사정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해결해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지역판에 노동조합이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물론 장기투쟁사업장 문제 등은 이 구조를 통해서 해결될 가능성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이행장치 없는 합의가 될 것이다.
서구에서는 노사의 자율교섭이 전제되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반노동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부와 함께 노사정협의틀을 제도화하자고 한다.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폭력적으로 관철을 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노동조합의 상층을 일부 교섭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렇게 폭력적이고 극한까지 간 투쟁의 해결방안을 내놓으면서 신자유주의 정책 일반에 대한 협조를 강요한다. 노동조합에서는 이것을 ‘산업정책 개입전략’ 혹은 ‘지역사회 개입전략’이라고 판단하면서 자리를 넓히려 하는 것이고, 이것이 정부의 전략을 용인해주는 방식이 된다.
6. 어떤 투쟁을 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노동자들의 위계화에 저항하고,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힘을 축적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우리의 노선으로 채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노사정위원회, 혹은 노사정협의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전술적 활용이라는 미명 아래 투쟁의 힘을 축적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정부와 자본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지금의 노사정위원회는 전술적으로도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운동의 목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기적으로 우리 투쟁의 힘과 명분을 축적할 수 있도록 초석을 잘 놓아야 한다.
(1) 누군가를 대리하거나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자들과의 연대전략이 핵심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왔다. 비정규직 문제를 의제로 올린다고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만드는 모든 논리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이나 자본가들의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상승이라는 논리가 퍼지고 있다.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워야지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투쟁도 누가 누구를 대리하여 임금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묶어놓고는 최저임금 투쟁이 마치 그 임금협상을 대리하는 것처럼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분쇄해야 한다. 누구도 최저임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용역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정규직 대표가 노사정대표자회의 등에 들어가면 이런 대표성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대표성이라는 것은 협상장에 들어가는 사람의 현재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당사자들의 대표로 존재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대표가 들어갔다는 것으로 대표성의 문제를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노사정위원회라는 조절·통제기구에서의 활동은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이라는 전제가 없는 이상 필연적으로 자본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2) 논의되는 내용의 파괴적인 효과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나 협의의 틀은 필연적으로 주고받기를 하게 된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는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최근 특수고용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부에서는 계속 T/F팀을 구성하자고 이야기한다. 이미 대책회의 차원에서 법안이 제출되어 있는데 그것을 관철시키는 투쟁이 필요하지, 무슨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인가? 그런데도 이런 논의의 틀에 대해 연연하는 사람들은 뭔가 정부가 끼어있는 그런 논의틀을 통해서만 입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정부가 이야기하는 입법의 핵심은 ‘유사2권’이다. 단체를 결성할 권리와 단체교섭을 할 권리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진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얻는 것에 비해서 잃는 것은 너무 크다. 그것은 바로 투쟁의 권리이다. 일단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재할 법률적 권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힘 관계에 의존해서 노동자들을 탄압했고, 해고나 용역깡패 등을 동원한 탄압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사2권’이 주어지는 순간 그 다음부터는 파업에 대한 행정적 제재가 가능해진다. 법적으로 ‘불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유사2권’은 우리의 권리가 불충분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니라, 파업의 권리에 대한 법적 봉쇄의 근거가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저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받기를 원하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대응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 등의 협의틀은 일단 들어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나오면 그만인 그런 곳이 아니며,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을 골라서 따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주고받기를 할 때 때로는 그 하나를 받지 않는 것이 운동적으로 더 의미있을 수도 있다. 특수고용의 경우 유사2권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의 상태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노동법 개악 폐기투쟁에서도 시행령이나 차별시정위원회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투쟁의 주체를 세우고 투쟁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행령에 대한 민주노총의 혼란과 동요는 결국 정권의 노동법 개악을 인정하는 효과를 낳으며 노동법에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아니면 비정규법안 자체를 대단히 실용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특히 이런 혼란은 노동법 개악 폐기투쟁의 전선이 만들어지지 않음으로써 각론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사태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런 점에서 공식적으로 노동법 개악 폐기를 선언하고, 그로 인해서 나타나는 각종 사안들에 대해 집중적인 투쟁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일이다.
차별시정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구조 안에서 차별시정 절차를 밟는 것은 합리적 차별의 기준을 축적해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단 하나도 제대로 된 차별시정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개인들이 3개월 안에 자신이 차별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렵겠거니와 설령 차별시정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본가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대법원까지 갈 것이다. 몇 년의 기간이 걸려서 차별시정 결과가 나온다 한들 그 때가 되면 이미 현장은 비합리적 차별이라고 인정받은 모든 조건을 다 변화시켜서 합리적인 차별인 것처럼 변화시켜놓을 것이기 때문에 그 실효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 차별시정이 가능할 수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럴 가능성이 원천봉쇄 된 상황에서 자본과 정권이 말하는 바 차별의 합리적 기준을 축적해주는 것이라면 오히려 ‘차별시정’ 조치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투쟁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재 자본과 정권이 만들어놓은 테두리 안에 다시 갇혀서 그 안에서 논의하고 빼앗기는 방식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대로의 진지를 만들고, 장기전을 준비하는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테면 지금 공공부문에서 정규직화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공동투쟁을 현실화함으로써 무기근로계약 따위가 아니라 정규직화 쟁취의 전형을 만들어내야 한다. 동시에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계약이 해지되고 있는데, 분산적으로 내버려두지 않게 ‘피해자 모임’을 적극 조직하여, 이후 투쟁을 예비해야 한다. 그리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쟁취 투쟁이나, 간접고용 전체를 모으는 간접고용 원청 사용자 책임 인정 투쟁 등 우리의 요구를 적극화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재조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틀 안에서 어떻게 버틸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노동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테면 소위 ‘합법적 계약해지’에 맞선 투쟁을 만들어 의제화하는 등 공세적인 노동권 쟁취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주체가 제대로 서고, 투쟁의 방향과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 때 ‘협상’도 전술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도대로 재편하여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려는 자본의 광풍 아래에서, 작지만 소중한 현장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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