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양태와 실태
(1)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등
가. 기간제 노동자
흔히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아르바이트 등으로 불리며, 노동법적으로는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물론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만, 이들 기간제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직접적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부른다.
일용직, 임시직, 촉탁직, 계약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들은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갱신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상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통념 중 하나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기업의 일시적 수요에 따라 사용되는 임시 노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3개월, 6개월, 1년 단위의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방식으로 수년 간 상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장기계약직' 이니 '상용일용직' 이니 하는 웃지 못할 이름도 나타난다.
기간제 노동자가 비정규직인 이유는 이들이 아무리 장기근속을 했더라도 사용자가 재계약을 거부하면 언제든지 일자리를 상실할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형태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경우 3개월에서 1년 짜리 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하면서 수년을 계속 근무해 왔지만, 2000년 12월 한국통신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계약직 노동자 7000명에 대한 재계약을 거부했을 때 정리해고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판례에 따르면 "장기간에 걸쳐 갱신이 반복되어 정해진 근로계약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라고 하여 이런 경우의 재계약거부를 해고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얼마만큼 장기간에 걸쳐 갱신이 반복되어야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일관된 기준이 없고 개개의 사안에 따라 판단하고 있고, 보통 1∼2회의 계약갱신은 이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요컨대 기간제 고용의 문제는 기업이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활용하다가 경기변동이나 구조조정의 필요가 있을 때 손쉽게 계약해지나 재계약거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고용불안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실상 기업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임금과 노동조건에서의 차별이 심각하다.
나. 시간제 노동자(파트타임)
단시간 노동자 또는 파트타임이라 불리는데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1주간의 소정 노동시간이 당해 사업장의 동종업무에 종사하는 통상노동자의 1주간의 소정노동시간에 비하여 짧은 노동자"를 말한다. 통계적으로는 주당 노동시간이 35시간 이하인 노동자를 단시간 노동자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관된 기준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단시간 노동자 중 통상노동자와 동일한 시간, 또는 그 이상을 일하는 유사단시간 노동자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 주유소나 편의점,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유통이나 금융부문에서는 단시간 노동자들이 상용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1997년 상업연맹 유통산업 비정규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시간제 노동자의 주된 노동시간은 평균 45.76시간으로 실제 단시간 노동자라 볼 수 없는 경우였다.
(2) 간접고용 노동자 - 파견, 용역, 사내하청 등
가. 파견
'파견'이란 엄밀하게는 파견법에 근거한 간접고용을 뜻한다. 파견법은 법형식적으로는 파견허용업종과 파견허용기간을 제한함으로써 합법적으로 간접고용을 사용할 수 있는 테두리를 정하고 있다. 즉 26개의 전문적 업무에 대해서는 최장 2년간, 일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최장 6개월간 합법적으로 간접고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파견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실질적 사용자(사용사업주)와 근로계약상의 사용자(파견사업주)의 분리가 허용된다. 역으로 말하자면 파견법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간접고용은 불법이 된다. 그러나 파견법의 제정 이전부터 간접고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그 대표적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나. 용역
'용역'이란 노동현장에서 간접고용을 지칭하는 용어로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용역을 허용하는 법 같은 것은 없다. 1970년대 말부터 건물 청소, 경비 등 업무에서 용역업에 확산되었는데 이 용역업에 관한 법률로서 [용역경비업법], [공중위생법], [공동주택관리령]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법들은 용역업을 할 수 있는 기준과 허가절차 등을 다룬 것들이지 노동자를 파견할 수 있는 근거법률이 아니다. 말하자면 용역업체가 사용업체와 독립적으로, 노동자를 전적으로 지휘감독하는 경우(이것은 간접고용이 아니라 민법상 도급에 해당한다)를 상정하고 있는 법령들이기 때문에, 사용업체가 용역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고 있다면 이는 불법적 파견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기술용역'이라 하여 전산업무와 관련한 용역이 성행하고 있다. 정보통신업계에서는 '격지근무'라고도 불리는데, 프로그래밍업무 등을 발주 받아 사용업체에 노동자를 공급하는 경우이다. 격지근무를 하게 되면, 구체적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1-2개월에서 1년까지 사용사업체에서 일하면서 수시로 사용사업체로부터 업무진행정도를 점검 받고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벤처업체 중에는 이러한 용역파견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현행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이 기술용역을 허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용사업체가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였다면 간접고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업무위탁 / 노무도급
현장에서 '업무위탁' 또는 '노무도급'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역시 계약형식은 도급계약을 위장하고 있다. 즉 사실상 노동자파견이면서도 형식적으로는 특정업무를 타회사에 위탁한 듯한 외관을 띄는 것이다.
부산지하철의 경우 공기업구조조정방침에 따라 매표업무를 민간위탁하였다. 그러나 말이 위탁이지 매표업무에 대한 감독을 해당역장이 하였을 뿐 아니라 매표에 필요한 시설과 물품도 지하철 소유의 것을 무상으로 사용하였다. 결국 부산지하철은 2003년에 부산지방노동청으로부터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받았다.
SBS의 경우 파견운전직을 사용하다가 파견법 상의 직접고용의무 문제가 제기되자, 동일한 노동자들을 노무도급 형식으로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파견제였을 때와 노무도급일 때의 차이란 도급업체 소속의 관리자가 있다는 것 밖에 없는데, 이 관리자란 사람은 그전까지 파견운전직으로 일하던 사람을 과장 직책을 내어주고 배차업무를 돌보게 한 것에 불과했다. 요컨대 파견·용역업체 소속의 관리자를 선임하는 것만으로, 파견이 아닌 적법한 노무도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 사내하청
1980년대부터 자동차·조선 등의 제조업에 도입되기 시작한 이른바 '사내하청', '외주용역'의 경우도 불법적 간접고용이라 볼 수 있다. 사용업체와 사내하청업체 간에는 도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사내하청업체는 노동자를 공급하는 것 이외에는 독자적 생산설비나 작업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다. 사실상 이들 사내하청업체가 하는 일이란 노무관리의 일부를 담당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것뿐이다. 사용업체는 사내하청노동자의 투입과 해고에 관한 결정권한을 행사할 뿐 아니라 대부분 직접적으로 지휘·명령을 한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사용업체의 노동자들과 함께, 또는 그들을 보조하여 사용업체의 생산조직 속에서 일을 한다.
(3) 특수고용 노동자
특수고용형태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일을 시키는 형식의 고용 형태를 가리킨다. 사용자와 노동자와의 계약관계를 보면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레미콘운송기사, AS기사, 애니메이터, 텔레마케터 등과 같이 업무위탁계약 내지 도급계약이 일반적이지만, 방송사 작가, 리포터의 사례처럼 프리랜서 형태의 계약도 있고, 골프장 경기보조원 사례처럼 아예 사용자와 일체의 계약 없이 알선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특수고용 형태는 서비스 산업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윤증대를 위한 자본의 경영방식 및 노무관리방식의 전환 등으로 매우 급증하고 있으며, 그 형태 또한 매우 다양화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실상 업무수행에 관한 지시를 받고 계약해지 등 방식으로 사용자로부터 직간접적 통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들이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는 형식적 이유를 들어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계속 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4대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되어 법정수당, 휴일·휴가, 고용보장, 모성보호, 산업재해, 퇴직금, 실업수당 등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고, 노동조합 설립 및 단체교섭, 단체행동권의 행사도 매우 제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2.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투쟁과 요구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은 대략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조직화와 투쟁이 이 시기부터 진행된 이유는 1997년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이 위협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자본은 조직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과 여성 노동자부터 희생양으로 삼았고, 노동조건과 고용이 열악해졌다. 이처럼 생존의 벼랑에 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9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조 투쟁, 재능교육교사노조 투쟁, 2000년 서울대시설관리노조 투쟁, 방송사비정규노조 투쟁, 한국통신계약직노조 투쟁, 2001년 건설운송노조 투쟁 등 노조 조직화와 동시에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요구들이 핵심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첫째,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 요구이다. 경제위기 이후 자본은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거나 정리해고의 1순위로 삼았다. 한국통신의 경우 1998년·1999년 명예퇴직 형식으로 정규직을 대량해고하고, 2000년에는 계약직 7000명을 정리해고하고 도급으로 전환시켰고, 2001년에는 여성이 집중되어 있던 114안내업무를 분사시켰다. 이에 한국통신계약직노조는 재계약거부와 도급전환이 정부와 한국통신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전략 속에서 발생한 것임을 선전하면서, 구조조정에 맞선 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투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02년 한진관광 면세점지부 노동자들의 경우 한진관광 소속의 파견노동자들을 대한항공이 그룹의 전문용역업체로 전적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투쟁했다. 면세점지부 노동자들은 파견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와 강제전적이 곧 한진관광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의 선봉으로 진행되는 것임을 선전하면서 정규직과의 공동투쟁을 벌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비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나 더욱 열악한 고용형태로 전환시키려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안정과 함께 끊임없는 노동의 불안정화를 강요하는 구조조정 자체에 대한 반대투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둘째, 고용불안과 중간착취를 조장하는 제도, 특히 파견제에 대한 반대 요구이다. 방송사비정규노조의 경우 파견법 상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으로 말미암아 2년마다 주기적으로 해고될 수밖에 없는 파견제에 맞선 투쟁을 계속해왔다. SK인사이트코리아노조의 경우 불법파견으로 사용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조를 결성하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다가 해고되었다. 그렇지만 4년에 걸친 투쟁을 통해 SK가 파견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하도록 만들고 2003년에는 대법원으로부터 SK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끌어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파견법이 간접고용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고, 정부와 자본이 불법파견을 양산하고 있음을 폭로해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민주노조진영에서 '파견법 철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셋째,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요구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자본이 '개인사업주'라며 온갖 비용을 떠넘기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해왔다. 그러나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자본의 공세와,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검찰·법원의 논리 앞에서 지난한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있어 핵심적인 요구가 되었다.
넷째, 차별철폐와 저임금 근절에 대한 요구이다. 비정규직은 기업이 일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로 인하여 저임금을 비롯한 각종 차별에 시달려왔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상호 분열과 위계화를 낳는 구조가 되기도 한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극심한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이러한 투쟁을 통해 불안정노동자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고발하였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부터 차별을 철폐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계급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 아래에서 생존의 벼랑에 몰린 노동자의 상태를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것이었고,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이러한 상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개개의 투쟁이 분산되어 있고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개별 노조에서 얻은 부분적 성과마저도 다시 빼앗길 위험에 처해 있다.
3.비정규직 노동자 공동투쟁의 의미
왜 비정규직 노동자 공동투쟁이 필요한 것인가? 처음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분출했을 때에는 서로의 품앗이투쟁이 필요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결성과 동시에 온갖 탄압을 받게 되고 계약해지 되어 사업장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비정규노조는 서로의 투쟁에 품앗이로 연대하면서 투쟁을 지속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단위 사업장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비정규직 공통의 문제라는 것을 배워나갔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투쟁이 계속되면서 상황이 바뀌어 갔다. 여전히 비정규직 노조 다수가 온갖 탄압으로 인하여 노조 조직자체를 유지하기 곤란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 이외에도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을 분리시키고 정규직 노조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관리하도록 하는 자본의 새로운 전략도 진행되고 있다. 이 속에서 비정규직 노조는 조직형식은 유지하면서도 사업장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안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조의 간부들은 당위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 공동투쟁에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단사의 현안에 대응하는 데에도 힘이 부쳐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 노조가 계속 조직되면서 고용형태별로 각각 요구가 구체화되어 가면서 이전과 같은 품앗이투쟁의 동력이 떨어지게 된 점도 있다. 전국적 업종노조로 결집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공동요구를 중심으로 공동투쟁을 전개해왔다. 간접고용의 경우 아직까지 간접고용 철폐의 공동요구를 중심으로 투쟁을 만들어낸 경험은 부족하다. 다만 2003년 들어 사내하청 노조가 속속 조직되면서 불법파견의 문제와 원청을 상대로 한 조합활동 보장 요구가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가 투쟁 속에서 구체화되고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고용형태의 차이를 넘어서는 비정규직 공동의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우선 비정규직의 문제가 사업장의 현안을 풀어나가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구조적 힘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전략과 노동유연화 정책으로부터 나온다.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의 시정이라는 소박한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구조조정 전략을 관철시키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러하기에 개별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과 투쟁에 대해서까지 총자본 차원에서 저지하려 한다.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사업장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이 불안정노동을 양산하는 자본의 전략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중심으로 전체 노동운동의 투쟁을 만들어내는 선봉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전선이 만들어질 때 개별 노조의 사수와 생존권적 요구도 힘을 받을 수 있다.
둘째 각각의 고용형태별로 나타나는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은 이에 대응하여 비정규직 고용형태별 모순을 중첩시키거나 분열시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수고용 노동자의 조직화가 이루어지면서 특수고용을 다시 간접고용화시키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학습지업종의 경우 파견업체를 통한 학습지교사 고용도 진행되고 있고, 건설운송의 경우 중기업체와 위수탁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용역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한다.
간접고용의 경우도 파견과 노무도급, 특수고용직으로 계속 전환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사비정규노조 SBS지부의 경우 파견근로를 노무도급으로 전환했다고 사측은 주장하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파견운전직 중 한 사람이 파견업체의 직책을 가지고 배차업무에 관여한다는 점뿐이다. 또한 EBS의 FD의 경우 2000년 파견법 적용이 문제시되자 파견직 노동자에서 바우처(일종의 일당 같은 개념으로 정식 직원이 아닌 경우 바우처로 수당을 받는다)를 받는 특수고용직으로 바꾸었다가 2002년 말부터 다시 강제로 파견직으로 전환하고 있는 실정이다. SK 텔레콤의 파견직 전화상담원의 경우 파견직에서 1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으로 다시 벤더업체 소속 도급직으로 바뀌었다가 결국 분사된 업체의 계약직이 되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되면 자본은 곧바로 더 열악한 비정규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내부의 위계화를 만들어낸다. 2000년 롯데호텔노조의 투쟁으로 3년 이상 계약직이 정규직화되는 길이 열리자 자본은 단기계약직을 만들어내서 투쟁의 성과를 무력화시켰다.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의 투쟁으로 조합원의 자동계약갱신을 쟁취하자 곧바로 사측은 파견직과 시간제 노동자를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가 현재의 성과에 머무르는 순간 자본은 곧바로 더욱 조직하기 어려운 고용형태로 전환시키거나 더 열악한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입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서로의 존재형태와 요구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비정규직 철폐의 전망 속에서 계속 전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셋째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전체 노동운동의 투쟁으로 만드는 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의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의 문제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과 구조조정으로부터 비롯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규직-비정규직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가 현실적 과제로서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는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법 개악이 계속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가 대립하는 듯한 양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운동주체화가 필요하다. 어디에서 이것을 시작할 것인가?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통하여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개별 사업장 수준을 뛰어넘는 운동의 시야와 경험을 얻고, 전국적 투쟁으로 만들어낼 때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 노동운동의 투쟁으로 만들 수 있는 현실적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4.아래로부터의 공동투쟁을 준비하자
지금까지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투쟁하는 노조간의 품앗이투쟁, 몇 차례의 비정규노동자대회,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입법요구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개별 노조의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만들어내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다 대중적으로 조직하는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한 한계가 있다. 또한 공동투쟁이 비정규노조 간부들만의 투쟁으로 좁아지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역 차원에서 비정규직 노조간 교류와 공동투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조합원 수준까지 비정규직 문제의 구조를 이해하고 일상적인 공동투쟁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지역 차원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실천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공동투쟁도 함께 전개해야 할 것이다. 특수고용노조의 경우 특수고용대책회의를 통해 서로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공동의 법제도적 장애를 돌파하기 위한 실천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간접고용의 경우 아직 간접고용 철폐를 공동의 투쟁요구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파견, 용역, 사내하청 노동자 별로 각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후에는 원청(사용사업주)의 사용자책임 인정 등의 내걸고 공동투쟁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저임금 근절을 공동요구로 하는 투쟁을 만들어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정책은 우리사회 전반에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비정규직의 상당수가 법정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뼈빠지게 일해도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4년에는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완전적용 등을 구체 요구로 하여 중간착취를 낳는 간접고용 근절 등 저임금을 강요하는 구조에 대한 반대투쟁을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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