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인사무서비스 노동조합 조직부장이신 정현철 동지께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투쟁하는지 그 치열한 삶과 눈물과 투쟁과 일상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전북지역 평등노조 조직부장이신 조혜진 동지 외 여러분들이 연재를 해주실 것입니다. 중소·영세·비정규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 동지들의 수고와 고민이 이 곳에 담기고 이 글을 읽는 동지들이 위안을 얻고 결의를 다지고,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군산휴게소
2006년 2월 군산휴게소(목포방향)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한국도로공사 휴게소 사업의 위탁업체인 찬효산업 노동자들은 하루12시간 근무에 휴일도 보장받지 않은 채 일을 하면서도 법정수당 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저임금에 시달렸다. 한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에서 벌벌 떨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낡은 블라우스에 신체가 드러나며 일했다. 찬효산업은 게다가 상습적으로 임금체불을 하는 악질 사업장이었다.
이에 시달리다 못해 찬효산업의 직영(관리자 및 청소원)노동자들, 주유노동자, 가판 및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가입하자마자 15일 후 찬효산업 직영노동자들 15명이 해고를 당했고, 이에 대하여 노동조합에서 파업투쟁을 전개하자 한국도로공사는 2006년 4월21일 서해안고속도로 군산(목포방향)휴게소 입·출구를 전면 폐쇄하였다. 이는 군산 휴게소 운영업체인 찬효산업이 4월 20일 영업정지 및 직장 폐쇄를 단행하고 난 후, 도로공사의 후속 조치로서 1971년 도로공사 설립 이래, 최초의 조치였다.
그러나 이 고립된 상황에서도 군산휴게소 노동자들은 그 뜨거운 여름을 천막에서 잘 버텨내 주었고, 결국 10월, 노동조합은 원직복직 및 노동조합 인정, 근로조건 개선을 약속받음으로써 10개월 여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휴게소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배신
“노조탈퇴! 노조탈퇴!”
군산휴게소 정상화 된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2007년 2월 2일, 전주에서 확대간부회의 도중 군산휴게소 조합원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다급하게 이 짧은 네 마디만 반복한 채 전화를 끊었다. 당시 확대간부회의에는 군산휴게소 담당 조직부장과 조합원이 함께 참석을 한 상태였다.
2007년 2월 1일 군산휴게소 관리소장이 찬효산업 직영 조합원들(15명)에게 회식자리에서 ‘노조탈퇴 위로금’이라며 50만원이 든 돈 봉투를 건넨 것이었다. 아마도 사전에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고 회유를 통해 어느 정도 밑밥을 던져 놓았으리라!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마약같은 밑밥을 덥썩 문 자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고 주위 협력업체들을 설득․조직했던 위탁관리업체 찬효산업의 직영 관리자들이었던 것이다.
이 사태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노동조합에도, 지역 언론에도. 무엇보다도 그 힘들었던 파업기간을 동고동락했던 동지들에게 준 이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은 기가 막혔고, 언론은 간만에 기사거리 하나 잡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내심 눈치 보며 동요됐다.
분열
처음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맘먹은 이들은 본래 찬효산업 직영 관리자들로 공금횡령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해고위협을 받고나서 노조를 결성할 마음을 먹었다. 이들이 뭉쳐 노동조합을 찾아왔었고, 청소원들을 설득하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설득함으로써 그들의 해고 위협을 공동의 투쟁과제로 삼고 사측의 탄압을 잘 방어하고, 끝내는 승리했다.
그러나 그들의 원초적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그들은 단 돈 50만원을 받고 바로 노조를 탈퇴하고, 이어 다른 조합원들에게까지 노동조합을 탈퇴할 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임금체불에 대한 건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받아야 할 미지급 임금은 훨씬 더 많았다. 결국 50만원으로 정리를 해버린 셈이다.
투쟁의 주체였던 이들의 이탈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노동조합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게 된다. 그것이 비록 노동조합의 탓이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의 문제라고 굳게 생각한다할지라도.(물로 노조의 탓이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 두 명의 이탈은 기정사실이다.
관리자들의 이탈 이후 3명의 이탈자들이 점차적으로 발생하였다. 노동조합과 사측의 힘겨루기에서 이미 노동조합은 패배하고 있는 것이고, 현장장악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감돌고, 어느새 조합원들은 그저 그 상황에서 눈치를 보거나,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뒷짐 지고 바라보는 제 삼자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
노동조합은 정당하고 우리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것은 조합원들의 머리로 이해되겠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지켜낸다는 것은 투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이기에 사측으로 살짝 돌아서고 싶은 심정이 대다수의 솔직한 심정일 수도 있다.
해결사
“하는 것은 다 좋은데 앞장은 서지 마라!”
아마도 우리 조합원들이 집안에서, 혹은 지인들을 통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거나 투쟁을 하게됐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만큼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적으로 공격의 대상이자 희생의 대상인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적극적으로 활동하거나 대표라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대표해서 독박을 쓰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장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누가 앞에 서고, 누가 나아가려 할까? 노동조합 간부가? 위원장이? 그 누가 뭐라 해도 간부나 어느 급 대표가 아닌 현장의 주체가 스스로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정답이다.
중소영세사업장일수록,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자들일수록 해결사 노동조합을 요구하는 경향들이 두드러진다. 그야말로 자판기 노조. 조합비 넣고, 원직복직 메뉴 누르면 달칵 나오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데
노동자 계급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을 넘어 비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조차 분열되고 계층이 형성되고 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계급의 분열을 통해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을 심화시켜 단결력을 저하시키고 인건비를 줄임으로써 얻는 이윤의 효과를 노린다. 그런데 이것이 자본의 전략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노동자들 스스로 경쟁하고, 단결하지 않고, 동요되고 있는 것일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했으니,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선언이 왜 고독한 외침으로 허공에 날리고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이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단순한 진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교육
파업기간에 노조에서 가장 정성을 쏟는 게 교육이다.
이 기간만큼 집단적으로 집중할 수 있고, 실천적으로 많은 경험을 통해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없다. 노동자의 철학부터 역사, 경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육과 실천투쟁과 지역연대 투쟁 등 일상적 프로그램을 배치한다. 연애를 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어진다 하지만, 노조를 통한 교육을 받으면 위선적인 세상의 콩깍지가 벗겨진다. 여태 알지 못했던 세상의 존재감을 맛보게 된다. 해방감도 느낀다.
하지만 사업장 문제가 해결되고 현장으로 복직하게 되면 이내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심지어는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또다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에서 오히려 사측에 거슬리지 않도록 알아서 세심한 배려까지 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화가 가지는 의미는 더 이상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조직화가 문제라면 실로 예전보다 노동조합의 덩치는 엄청 불어났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모였지만, 투쟁할 수 있는 날보다 투쟁할 수 없는 날이 더 많아지고 있고(이제 집회도 주5일제이다), 1년에 두어 번 상경하면 할 도리 다 한 것 마냥 여기고 있다. 노동법은 줄줄이 사탕으로 개악되고 있건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고, 한-미 FTA가 합의되고, 노동자가 분신을 해도 촛불 한 번 드는 것조차 조직이 안 돼 힘겨워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사회는 노골적으로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고 착취하고 있는데 우리는 말로만 투쟁을 외칠 뿐, 각자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영달과 보위를 꿈꾸고 있는 마당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많아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조직된다고 한들, 한-미 FTA무효화는 그만두고라도 고용주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조차 무엇인가를 정말 쟁취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조직
비정규 미조직 사업장을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나 유통서비스 업종은 더 한 것 같다. 한 사업장 내에 다양한 고용 형태와 조건들로 인해 각 사업주가 따로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연령층, 성별, 학력 등은 각각 요구하는 이해도 다르다. 40~50대에게는 절박한 일자리가 20대에게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아르바이트처럼 여기기도 하기 때문에 절박함이라는 게 다르다. 그러나 결국 그 20대들은 40~50이 될 때까지 유통서비스의 담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듯하기도 하다.
누구에게는 고용안정이 문제이고, 누구에게는 임금이 문제이고, 또 누구에게는 근로조건 향상이 문제이다. 이렇게 다양한 요구들을 수용해서, 공동의 목표로 설정해 투쟁해 나가다보면 어느 그룹은 단거리에 끝나고, 어느 그룹은 장거리를 뛰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가 장거리의 호흡으로 끝까지 뛰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지점에서 묘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 대체로 유리한 조건의 그룹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급한 불도 껐고, 조건도 우수한데, 열악한 그룹의 문제해결을 위해 장거리를 뛸 것이냐의 기로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다. 계산기가 튀어나오는 순간 게임은 끝이다.
이러한 예는 군산휴게소 뿐만이 아니라 지자체 비정규직만 보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볼 수 있다. 전주시 비정규직 같은 경우 처음엔 모든 형태의 비정규직을 공동으로 묶어 투쟁을 조직해 왔으나 결국 상용직 따로, 280일 계약자 따로, 한시사역 따로 조직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자본주의의 고리 끊기
무엇이 우리 스스로를 분열하게 하고, 의심하게 하고, 주체가 아닌 제삼자의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도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을 통해 알게 되었던 세상과의 만남이 현재 살고 있는 자본주의만큼 달콤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투쟁은 순간이고 현실은 영원하다고 믿고 있기에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다지 정성을 쏟지 않는 게 아닐까?
나만 안전한 세상은 자본가가 꿈꾸는 세상과 다를 것이 없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세상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세상일 뿐이다. 내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고, 노동운동을 하고, 투쟁하는 주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수십 년을 남을 밟고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살아왔던 뼛속까지 이기적인 자본주의의 속성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회정의’라는 것이, 아직 이기와 경쟁, 효율의 논리보다는 배려와 공존, 평화의 논리가 선험적으로는 맞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사회가 자본의 논리, 경쟁과 효율을 무기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착취하고 있다면 우리의 무기는 배려와 공존이다. 너와 나의 문제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얽혀있음을 알아채고, 단결하여 행동하게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면 겨우 50만원으로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발상은 애초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생채기 내는 배신은 없을 것이다.
|
| 조혜진 |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전북지역평등지부 조직부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