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동권과 인권의 만남’에 대해서 철폐연대 4월 월례토론회에서 회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이 어떻게 만나왔는지,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등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아래는 월례토론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1. 노동운동 활동가과 인권운동 활동가들이 만나서 말 트기
-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지속적 만남 속에서 노동권의 인권적 재설정이 가능할 것
철폐연대가 인권단체연석회의(이하 인권회의)에 결합할 때 노동운동의 확장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으나, 실용적인 판단도 있었다. 초기에는 오히려 후자가 더 강했다고 볼 수 있지만, 사업을 함께 하면서 인권운동과 조금씩 더 만나게 되었다. 철폐연대가 인권운동과 만나면서 얻었던 긍정성은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인권회의를 통해서 서로의 운동에 대해서 조금이지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공동으로 문제제기하고 이슈를 만들어냈던 경험도 소중했다.
그런데 활동하면서 노동운동진영에서는 인권운동을 동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두 운동이 만나면서 인권운동이 노동운동을 지원해주는 관계 정도로 바라보는 측면이 존재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 등을 하고 그걸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갈지, 연대를 지속시킬지 고민이 부족하다. 그래서 토론의 주제가 노동권과 인권의 만남이지만, 노동권과 인권이 만나기 이전에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이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이 먼저 만나면 권리가 확장되지 않을까?
- 독자적 영역 구축과 함께 상호 연관을 맺는 과정이 필요할 것
오늘 만남이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총체적 구상 속에서 상호연관성을 맺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권활동가로서 개인적으로는 인권운동을 실용적으로 여기는 것 자체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에서 노동인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인권운동이 그러한 발언을 하는 것이 파급력이 큰 게 사실이다. 인권운동이 보편적 기준을 이야기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그러한 관심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다만 어떤 사회운동이든 인권운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전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인권활동가는 뭐냐? 인권단체라고 불리는 단체들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인가? 그러한 특권적 지위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다. 예를 들어 대추리 투쟁 당시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구속되었을 때 인권옹호가에 대한 구속에 대해 문제제기하였던 바가 있는데, 그렇다면 노조활동가가 구속되면 인권옹호자가 아닌가?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이 만나야 한다고 한 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만, 총적인 지향점을 향해 달려가더라도 자신의 독자적 영역에서 독자적 블록들을 구축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독자성들이 발전하고 총적으로 만났을 때 바람직하지 않을까?
- 인권운동이 노동운동을 만나면서 부재했던 것, ‘이후’에 대한 고민
키워드로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이후’가 머릿속에 남는다. 인권영화제의 경우 작년 하반기에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주제로 하여 각 여성사업장에 찾아다니면서 영화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인권영화제 반딧불을 하더라도 이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남았다. 실태조사를 하게 되더라도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공동실천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되지 못한다. 2004년 고려대 시설노조 투쟁에서는 ‘인권단체가 노조결성을 지원하였다면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라는 고민이 남았었다. 항상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남았다.
방어투쟁을 넘어서서 어떠한 실천을 해야 할지? 개별사업장에서 발생했던 노동권 침해사항을 일반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즉 노동권을 보편적 사회의제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 그간의 인권운동은 조직화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터지는 사안에 대응하는 것 위주였다. 인권이라는 의제로 이 사회의 인권의식을 높이는 활동을 진행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헛헛함이 컸다. 하기에 이제 그것에 대한 실천을 막 시작해보고자 하고 있다. 싸움은 이겼는데 사람은 남지 않는 느낌이다. 주체를 남기는 후속대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 (노동조합 활동을 중심으로)노동운동이 인권운동과 관계 맺을 때 부족했던 것
노동자 투쟁이 발생하고 조직화가 진행이 될 때 인권단체는 노조로의 조직화 이전에 활동들을 만들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비로소 자기식구가 되어야지 챙기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가 노조가 설립되고 그것이 안정화되면 노조 중심으로 흘러가고 오히려 다른 연대단위들의 개입력은 떨어지게 된다. 즉,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노동조합 조직 전에 노동자들과 많은 것들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노조로 조직이 되고나면 인권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작아지는 것이다.
뭔가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인권단체가 결합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하는데, 인권단체 구성원만으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특히 노동사안의 경우 노동조합 외의 다른 운동단위들은 포지션을 찾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크다. 마찬가지로 노동운동 속의 인권감수성도 여전히 고민이다. 노조가 만들어지면 왜 인권활동가들의 역할, 인권단체의 자리는 없어지는가? 사실 인권단체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노조활동가들이다.
예전에도 노동현장의 싸움은 많았다. 그런데 왜 요즘에 인권단체에 요구하는 것들이 많을까? 당장은 비정규직 싸움이 조직력이 약한 측면 때문이라고 하지만 예전이라고 안 그랬을까? 그래서 싸움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제는 사회적 합의나 통제시스템의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접점이 틀려졌는데, 기존의 노동조합에서는 이런 싸움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부분을 현장싸움과 결합시키면서 어떻게 부각시킬지, 그리고 그것을 일반의제로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 즉 노동현장의 문제가 왜 현장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제로 알려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노동조합은 인권단체를 통한 사회 의제화로 많이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노동운동이 현장에만 갇혀서 그런 것 같다. 7-80년대의 싸움은 현장의 싸움이 곧 사회적 투쟁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현장의 싸움일 뿐이라고 본다. 노동권을 둘러싼 사회적 싸움은 뭔가 라는 생각을 한편으로 해보게 된다. 모든 싸움은 사회를 바꾸는 싸움인데,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닫혀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이 만나기 위해서는 운동의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계속 설명하고 만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현장 싸움이 끝나고 조합을 만들면, 그때부터 노조가 알아서 할 일, 그러면 상급단체 할 일이 생기고, 그렇게 가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른 사회 운동들이 개입해야 한다. 장기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조합원 교육을 제안한다든지,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해봐야 한다.
2. 인권운동이 노동권과 만나기 - 노동운동 속의 인권 감수성
- 인권운동이 노동권과 만나가는 구체적 실천
최근 흥미로운 제안을 받은바 있다. 건설노조에서의 제안이었는데, 건설노조의 조직방식은 조합원들이 현장에 침투하여 노동자들을 조합으로 조직하고 단협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보니까 최근 안산지역에서는 건설사들이 안산뿐만 아니라 경기도 인근지역은 다 안 뽑겠다고 나오고 있다. 이에 서부건설노조가 제안한 것은 이를 노조탄압으로 걸고 가기보다는 지역주민의 우선고용이라는 사회적 의제로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건설노동자의 삶을 보면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면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동의가 되었고, 이를 건설노조의 중심요구로 삼고 또한 풀뿌리단체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노동의제와 보편적 의제가 만날 수 있겠다는 고민, 노동자가 인간이자 시민아니냐?
얼마 전엔 경희대 의료원 노조 인권교육을 갔다. 안정적인 노조였다. 여전히 답답했던 것은 노동권에 대한 닥친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지만, 인권감수성 등에 관련해서는 내 문제가 아닌 것으로 떨어트려 놓는다. 이것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 그것이 여전히 고민이다. 현장을 계속 찾아다니면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경찰폭력과 집시법 등의 사안을 가지고 교육을 하는데, 이런 문제는 또 현장의 투쟁과 관련성이 높아서 수용력이 높다.
고민의 지점을 바꾸게 되면, 싸움도 다양하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건설노동자 평균나이가 높아지니까 지자체와 싸워서 연금투쟁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또한 거주지가 없으니까, 공유지에 천막투쟁을 하여 주거권 투쟁을 하게 되었던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고민의 지점을 조금만 바꾸면 투쟁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 노동권의 확장을 위한 두 운동의 만남
최근 이런 갑갑함이 있었는데, 노동조합의 상태가 법에 규정되어있지 않으면 요구화해내지도 권리화해내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일요일은 노동자의 삶과 사회생활이 이루어지는 날이기 때문에 일요일의 노동은 평일의 노동과는 다르게 노동자의 삶을 침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법상 반드시 일요일을 휴무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요일 노동에 대해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운동 속의 인권 감수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섭의제화 시키지 못하면 투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단지 법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권리로 제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나머지 이러한 제기가 불가능한 현실이 존재한다고 본다.
노동권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실내용이 뭘까도 이야기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으니 때로는 ‘노동권’이라는 말을 매우 협소하게 쓰거나 서로 다르게 개념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장기투쟁 사업장이 많다. 교섭자체가 안 된다. 법적으로 어떤 판결이 나오든 사업주가 거들떠도 안 본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오로지 이야기되는 것이 투쟁!이라면 사실 난망하다. 인권단체 활동가로서 인권운동이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권에 어떤 키워드가 필요하겠다’라는 제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인권단체가 현재의 노동운동의 막힌 지점을 뚫어낼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면 좋겠다.
그런 뚫어 뻥,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겠다. 기간 인권단체가 노동권 활동을 해왔던 것은, 단위사업장들을 개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03년 노동권의 전반적 후퇴에 대한 보고서 작업을 한 바 있으나, 그 이후로는 인권단체 내에서 그 중요성에 비해서 노동권 의제를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기획하는 활동이 없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단위사업장들에서 우리에게 손을 뻗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으로 만날 것인가? 우리가 기폭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기폭역할을 하고자 해도,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노동운동진영이 현재 이 상태로 존재하는 한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은가? 다만 인권운동 활동가들의 짝사랑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조활동가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상호침투가 있어야 한다. 운동진영을 바꿔내는 몫을 인권운동진영이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스콤비정규노조에 반딧불 영화제를 하러 찾아갔을 때 문화운동과 노동운동 간의 친밀감을 느낀 바 있다. 투쟁방식과 활동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공간을 열고 계속 만나가면 좋겠다.
3. 노동운동과 인권운동, 어떻게 만나야 할까?
- 만남이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서
만나면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은 서로를 아직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내 현장의 임단협이 중요한데, 인권과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겠느냐? 라고 보고, 왜 노동조합은 폐쇄적이고 자기 이익만을 중시하느냐? 라고 보고, 서로 이해가 안 되고 있는 부분이 크다. 이럴 때 먼저 고민을 하고 있는 주체가 먼저 다가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한발 먼저 다가서는 것이 노동운동과 인권운동, 노동권과 인권이 만나기 위한 전제가 아닐까 싶다.
쌍방이 노력해야 하지만,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을 통해 얻은 성과들을 바탕으로 진행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본다.
물론 힘들겠지만, 한동안은 인권운동이 노동운동에 많은 것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제뿐만 활동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보태줘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의 권력지향성을 개선하고 조합원들에게 오히려 권력을 주는 민주주의에 대한 제기라든지, 운동문화와 조직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어 낼 것인지 등.
인권운동진영이 노동운동진영에 요구하는 것들도 있지만, 노동운동진영이 인권운동진영에 요구하는 바도 있다. 노동 사안 관련하여서는 관심이 없지 않느냐는 쓴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터지는 사건에 집중하는 것 외에 일상적으로 노동운동진영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하지는 못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이 전체운동을 대표해왔던 점을 염두에 둔다면, 두 운동이 만나는데 있어서도 노동운동이 해야 하는 몫이 크다고 본다.
약간 생각이 다른데, 어쨌거나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더욱 노력을 해줘야 하는 것 같다. 노동운동을 하는 동지들이 현장에서의 요구와 활동들을 인권으로 재구성하는 실천은 없었고 반성해야하는 부분이지만, 어쨌거나 인권운동을 하는 동지들이 인권이라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개념을 각각의 구체적 사안과 만나가도록 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노동자들은 생활의 영역뿐만 아니라 노동의 영역에서도 굉장히 이기적인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좀 더 요구하고 좀 더 비판하고 좀 더 바꾸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4. 인권이 노동권과 만나 운동을 확장하기 위하여
- 노동권이 인권으로 확장되기 위하여
이 토론을 준비하면서 고민 했던 것은, 인권운동의 개념자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였다. ‘인권이 아닌 것은 없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 거기에서 인권운동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 노동권도 인권이다. 그런데 운동은 분리되어 있다. 물론 그것이 효과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노동권과 인권이 이분화되어 인식되는 경향도 걱정이다. 또 하나는 인권운동이 다양한 운동의제에 대해 인권운동만이 할 수 있는 의제를 찾아야 한다는 고민도 있다. 대추리 투쟁을 하면서 인권운동진영이 던진 의제가 ‘평화적 생존권’이었다. 즉 권리영역화 하였다는 건데 노동운동에 접근하면서도 인권운동이 의제화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다.
노동권도 인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노조 중심의 운동을 통하여서만이 그 나마의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그런 우리사회의 조건을 바꾸어내고 다른 권리들을 확장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노조와 당 말고는 운동의 성과를 담을 그릇이 없고,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노조가 결성되면 뭔가 운동은 없어지는 경향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순간부터 수세적인 싸움, 지키는 싸움이 되는 현실이다.
노동권을 지키면 인권을 지키는 것 아니냐? 맞다. 그런데 사회의 억압을 돌파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인권을 지키는 노동권은 아니라고 본다.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등이 따로 분리되어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의 성과가 당과 노조로만 귀결된다는 점은 중요한 지적이다. 왜 운동의 성과가 노조로만 남는가? 노동권과 인권이 만난다고 했을 때, 만나서 상호변화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노동권의 개념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존의 노동조합이라는 틀 안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와 다른 것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권리의 문제, 의제의 문제로 가면 한편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특히 우리 운동이 의제별로 소통이 안 되고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인권은 주체를 놓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한데, 단순히 의제의 문제로만 이야기를 해본다면, 기존의 노동권은 착취와 억압 구조 속에서 노동조건문제를 제기하여, 노동조건을 사회화/사유화로 접근하면서 해석이 되었다고 했을 때, 여기에 인권의 문제의식을 결합시킨다면, 노동하는 주체에 대한 소유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의 문제로 해석의 폭이 넓어진다.
- 모든 권리의 단순한 총합이 아닌, 영역으로서의 인권이 다른 권리와 만나기 위하여
인권이 단지 다른 권리들의 총합으로만 여겨진다면, 실용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계속 고민이다.
이랜드 투쟁에서나 몇몇 투쟁에서 보여진 인권활동가들의 타협하지 않는 치열함, 온몸을 던지는 시위는 때로는 경외감을 갖게도 한다. 그것이 인권운동을, 또 인권활동가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기획력이나 상상력이 많이 부족하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인권활동가들에게 얻는 것도 많다. 그러나 다만 그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사회주의 국가가 와도 인권운동 할 것 같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우리는 노동조합의 자유만 결성되면 거기서 멈춰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나는 인간해방의 권리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할 텐데, 따라서 노동권과 인권이 만나는 것은 권리를 확장시켜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대성이다. 그리고 그 연대성이 인권감수성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싸워야지 내 문제도 해결 된다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4월 월례토론회 ‘노동권과 인권의 만남’,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회원 동지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어서 정리를 했습니다. 아직 서툰 고민이지만, 이번 월례토론회를 계기로 철폐연대 전체가 고민을 더 확장해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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