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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출처 노동과 세계 이정원 |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을 하다
10월 26일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분신하신 이용석 열사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이하 '노조')의 교섭위원이었다. 가장 앞장서서 노조 활동을 할수록 동지의 고통과 분노는 깊어가기만 했다.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근로복지공단이 문제였다. 2003년 3월 노조 설립 때까지는 복수노조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독자노조 설립으로 한 숨 돌리자 수개월을 교섭당사자 인정 문제로 공단과 씨름해야 했다. 중노위에서 공단이사장이 교섭당사자라는 결정을 받았지만 교섭 자리에 나오기만 할 뿐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교섭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용석 동지가 한여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 쓰러질 정도였지만 그들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교섭에 나와선 '정부 지침이라서 어쩔 수 없다', '어려운 시험 치고 들어온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어찌 같을 수 있냐'라는 말이나 해대는 공단측을 만나면서 동지의 가슴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계약해지의 위협 그리고 1300여명 중 38명을 뽑는 정규직 승진 시험 때문에 단체행동에 나서길 주저하게 되는 계약직, 일용직 조합원들을 보며 동지는 끝없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를 위한 업무를 하는 직장이라서 근로복지공단이 너무 좋았다는 이용석 동지는 노동부 산하인 이 공단에서 오히려 차별을 당연시하고 비정규직을 더 확대시키는 것을 보고 공공부문에서도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소중한 한 몸을 바쳐야만 무책임한 노동부,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차별과 노조탄압을 일삼아온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이용석 동지를 죽인 것이다. 공공부문으로서의 책임감, 역할은 깡그리 무시한 채 비정규직을 2등신 분으로 양산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정부가 이용석 동지를 죽인 것이다.
노동자가 생명을 걸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알리고 나선 상황에서 정부는 과연 믿을 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10월 29일 발표된 3개 부처 담화문을 보면 비정규직 동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비정규직 노동악법을 보호입법으로 둔갑시키려고 술수를 쓰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2002년부터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랍시고 노동법 개악안을 계속해서 추진해왔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노사정위 공익위 안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을 추진해왔다. 온 나라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법,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법을 추진해왔다. 이것이 3개 부처 담화문에서 말한 소위 '비정규직 관련 제도개선'의 실내용이다. 죽음으로써 항거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염원은 무시한 채 이 기회에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을 은근슬쩍 통과시킬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 대응을 믿을 수 없다. 입법 시기와 상관없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조속히 시행하겠다지만 믿을 수 없다. 진정으로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라면 현실태 및 그 원인과 실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1.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태
1) 공공부문 비정규직 얼마나 늘었나
98년 이후 공기업은 대폭적으로 인력을 감축했다. 조직 축소 및 인건비 절감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한편, 국가가 스스로 '정리해고의 모범'을 보여서 사적 자본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선도하겠다는 의미였다. 인력감축 방식은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 대단히 인위적인 것이었으며, 일부 인력은 분사, 아웃소싱, 도급화 등을 통해 축소되었다. 인력감축은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 강화를 동반하였다. 게다가 2001년부터는 '상시적 구조개혁 시스템 정착'이라는 목표 아래 예산배정과 인력감축을 연계해서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인력감축은 공기업 노동자들을 불안정 노동시장으로 편입하는데, 첫 번째 양상은 '기존의 중앙 집중식·관료적 조직구조를 수익 추구적·노선별 사업본부제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사업본부 별로 경영실적을 비교하여 성과급을 지급하고, 효율성을 상승시켜, 공기업 인원수를 감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종과 공장을 분리하여 외주하청 및 공기업 전체의 분할사유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사업본부제끼리 경쟁하도록 해서 노동자들의 경쟁을 심화하고 그 결과 경쟁에서 진 사업본부제 노동자들에게 외주하청의 위협을 가한다.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등으로 인해 잘려나간 노동자들이 모두 공기업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이 노동자들은 다시 공기업에서 일을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있다.
<표>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재고용 여부
| 다시 근무 한적 없음 | 정규직으로 다시 채용 | 계약,촉탁,임시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화 | 위탁,도급,파견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화 | 합계 | | 응답조합수 | 42 | 1 | 65 | 19 | 127 | | % | 33.1 | 0.8 | 51.2 | 15.0 | 100.0 | | 공공연맹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결과 (2002.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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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이었던 노동자가 인원감축 이후 계약, 촉탁, 임시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다시 일하는 경우가 51.2%에 달한다. 그리고 간접고용으로 전환된 경우도 15%에 달한다. 즉 고용조정된 노동자들의 2/3은 어떤 형태로든 공기업에서 다시 일하고 있으며, 처지만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또 정원동결 방침이 유지되고, 구조조정 방침은 내려오는데, 절대적인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입으로 노동강도 강화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경영혁신 미이행시 예산중단'이라는 위협으로 구조조정을 수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2001년 상반기에는 700억원이, 하반기에는 400억원의 예산이 유보되었다. 경영혁신을 이행하지 않은 것만큼 예산으로 계량화되어 인건비 지급 중단 위협을 자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대부분 공기업은 비정규직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말 과학기술계 정부출연기관의 연구직 비정규 노동자들은 5,529명으로 전체 13,695명의 40.4%에 달하고 있다.
<표> 비정규직 인원 증가 2000년 ∼ 2001년 말 현재
| 구분 | 2000년 말 | 2001년 말 | 비고 | | 전체인원 | 11,434명 | 13,695명 | 2,261명 | | 비정규인원 | 3,870명 | 5,529명 | 1,659명 | | 비율 | 33.8% | 40.4%(11.1%) | | | 과학신문 2002. 2. 6 [공공연맹 정책자료집]에서 재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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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정규직 노동자 전반의 노동조건 하락
이러한 인력감축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은 이미 비정규직이었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구조조정의 1차 대상이 되어 잘려나가거나 더 나쁜 조건의 비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강요당했다. 기존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변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것은 바로 한국통신계약직이다. 그동안 한국통신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는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일부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왔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지난 97년 이후 한번도 계약직의 정규직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채용이 있을 것이니 기다리라고 하면서 계약직 노동자들이 이직하려는 것을 잡아놓았다. 그러다가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2000년 12월 7,000명을 정리해서 도급(약 3200여명)으로 넘겼고, 2001년 7월에 나머지 계약직 노동자 3,000명(114번호 안내국)을 분사한 것이다. 담배인삼공사의 경우 정규직들을 명예퇴직 시키면서 그 사원의 직계가족의 자녀에 한해서 계약직 사원으로 취업하는 것을 약속하고, 1년 후 고용직으로의 채용을 약속한 바 있다. 이로 인해서 계약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서울대공원이나 부산 해양대, 서울대학교 사례 등을 보면 예산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최저낙찰제를 실시하여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
한 집배원은 한 달에 한번도 쉬지 않고 매일 10시까지 일해도 150만원을 받는데 이것은 정규직 집배원이 휴일 근무 전혀 없이 매일 8시까지 일했을 때 받는 월급과 같다"고 하여 상시위탁 노동자들이 얼마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담사례에 의하면 예산이 적게 편성되었다고 임시직 노동자들에게 강제로 4일을 쉬게 해서 월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 강제 휴무로 인해 가뜩이나 낮은 비정규직 임금이 더 깎인 것이다.
인력감축 위주의 고용정책을 펴다보니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3) 비정규직화로 인한 노동기본권의 박탈
대부분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법적으로 구제 받을 길이 없다. 원청사용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해지를 일삼는다. 그래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 불법파견으로 제소하기도 했으나, 그 경우 오히려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았다.
예를 들어 대송텍의 경우 '대한송유관공사'가 불법파견을 한 것은 확실하고, 직접고용을 하라고 노동부에서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대한송유관공사에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만 길거리로 내쫓은 것이다.
최근 도시철도공사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낸 진정에 대해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으나 공사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면서 직접고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확대되는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라도 원청노동자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게 만들고,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쟁취해야 한다.
계약직 노동자들도 '계약기간 만료'라는 이유로 쉽게 해고당한다.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도 6년 이상 계약갱신을 하면서 노동을 해왔던 노동자들조차도 마지막에 3개월짜리 계약서에 강제로 서명한 것 때문에 이미 계약기간 만료 후 계약해지를 승인한 것과 다름이 없다면서 이 노동자들의 해고를 용인했다. 근로복지공단에의 비정규직 관리세칙에는 근무평정 결과 3회 이상 하위 10%에 들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이 들어있다. 또한 최근에는 공공부문에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홍익매점의 경우 홍익회의 성과급 영업사원이었던 노동자들이 개인도급으로 전환하면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홍익회나 철도청에서도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협 체결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부문에도 성과가 반영되는 비율이 높거나 개인업무가 많은 곳에서는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서 고통 당하는 특수고용직이 도입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완전 인정 문제 역시 공공부문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2.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결을 위한 우리의 요구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원칙이 필요하다. 기간제 고용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 직접고용원칙을 분명히 하여 파견, 용역 등의 간접고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할 것이 당연히 요구되는 대표적인 원칙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특수성으로 인해 요구해야 할 것도 있다.
정부는 이윤만을 생각하는 무조건적인 인력감축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무리한 인력감축으로 인한 공백을 비정규직 전환 및 도입으로 해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력충원 관련한 정부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력충원' 요구만 제출되었을 경우 필연적으로 비정규직만 확대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던 체신노조는 2000년 8월 24일 체신청과 '긴급노사협의회 협정서'를 맺고 이것보다 못한 수준의 합의를 했다. "상시위탁 집배원을 증원하고 대무사역시 확보 배정"을 통해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하며, "도시지역의 소포위탁배달 추진과 대단위아파트 지역 통상우편물 배달 위탁 시범추진"하여 민간위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인력충원 요구가 다시 민간위탁이나 비정규직 확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공기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미 어디에서나 인력충원의 요구가 충만하다. 워낙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업의 인력부족을 일부 업무의 용역화나 비정규직 충원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결국 노동자들이 제 발등을 찍는 결과가 된다. 광범위한 비정규직 풀, 즉 유연화가 가능한 노동자군이 있으면 부담 없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구조조정의 전제가 된다.
인력충원의 요구는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에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철도나 지하철의 인력부족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한국통신이나 전력 등에서의 인력부족은 민중들의 삶의 불편을 초래한다. 우체국의 인력부족 때문에 국민들은 비싼 '빠른 우편'을 이용하면서도 '보통우편' 수준의 서비스를 받게 된다. 인력을 확보한다면서 비정규직을 늘려놓는 것은 결국 이러한 상황을 반복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인력부족은 연구의 부실함과 연구인력의 유출로 나타난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농촌지역의 우체국을 폐쇄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노조와 함께 연대하여 막아낸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인력충원의 요구는 반드시 '정규직으로의 인력충원'이어야 하며, 반드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대해 정부는 항상 예산 타령만을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공공부문이 모범적인 노동조건의 선례가 되게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이다.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무료 간병인 소개소를 폐쇄하면서 유료 소개소를 도입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간병인 서비스는 병원에서라면 필수적인 업무이다. 그럼에도 서울대병원은 간병인을 직접 고용하여 노동조건도 보장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을 하기는커녕 기존의 무료 소개소를 폐쇄하고 유료 소개소를 도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노동기본권이나 공공서비스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공공부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장 이런 현안 문제부터 해결하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증명하라.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한 채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서울대공원노조, 1300여명의 비정규직 중에서 기껏해야 38명이 정규직으로 될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변칙적인 고용구조, 2년마다 파견노동자 해고를 자행하는 KBS, 중간착취 때문에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공공기관 청소용역, 시설관리 노동자들 문제를 해결하라. 이렇게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실행하지 않고 말로만 대책 운운하는 현재의 모습을 계속한다면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강력한 투쟁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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