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투쟁을 이야기하려면 구조조정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되어 왔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이 구조조정에 어떻게 대응해왔고, 그 후과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럴 때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은 주체들의 눈물과 고통의 역사임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전진해온 역사임을 이해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투쟁했는지, 이 투쟁을 통해 무엇을 잃고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획득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관점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사는 제대로 다뤄질 수 있다.
1. 비정규직은 어떻게 확산되어 왔는가?
(1) 비정규직 문제의 출발
신자유주의는 8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시작되었다. 노동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도 그 때부터였다.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박탈, 임금■복지제도의 파괴, 해고하는 자유를 얻고자 자본은 국가의 폭력을 등에 업고 유연화를 관철시켰다. 우리나라는 80년 중후반 3저호황 등으로 생산이 확대되자 노동유연화 보다는 노동자들을 기업 안으로 묶어두고, 병영적 통제를 가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했지만,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조직력이 강화되면서 자본 입장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유연화를 도입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시장이 확대되는 곳은 애초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노동시장을 형성해왔다. 예를 들어 민간서비스부문에서는 이 노동이 여성의 가사노동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여성노동자들을 대폭 고용하면서도, 그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여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을 일삼았다. 대형유통할인점에서 자본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간노동력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80년대 급격하게 건설경기가 활성화되면서 건설일용노동자들도 많아졌다. 경기의 흐름도 많이 타고,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루어진 건설업에서 자본은 하도급의 맨 아래에 일용직 노동자들을 써왔던 것이다.
이처럼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특정한 산업에 편중되어 있었지만, 이것은 이후 전반적 유연화를 위한 전초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간유통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은 많이 조직되어 있지 않았고, 노동운동에서도 중요한 영역으로 사고되지 않았다. 건설일용부문에서만 노동조합이 건설되어 조직을 확대해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은 전체 운동의 문제라기보다는 특정한 영역의 특별한 문제로 취급되었다.
(2) 유연화에 대한 시도 - 신경영전략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자본이 본격적으로 전산업에 걸친 유연화를 시도하면서부터이다. 대기업들이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시작했다. 기업문화전략을 통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용역■외주화■아웃소싱 등의 구조조정이 그 내용이다. 이것은 린생산방식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어서 핵심부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서의 외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노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민주노조운동은 ‘신경영전략’을 노조무력화를 꾀하는 신종전략으로 이해하고, 현장투쟁을 통해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대응했고,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유연화의 전반적 경향 속에서 제출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반면 자본은 한편으로는 ‘신경영전략’을 통해 현장에서 신자유주의 전략을 시도하는 한편 법적으로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만들어서 유연화를 제도화하고자 했다. 93년 근로자파견제 도입 시도, 즉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법안이 시도되었다. 이것은 이미 현장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용역, 외주화, 아웃소싱 등 구조조정 전략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로서 이후 수많은 간접고용을 양산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전노협의 치열한 투쟁으로 이를 막아냈으나 자본과 정권은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서의 유연화와 법적 제도화를 추진해왔다.
(3)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비정규직의 확산
96■97년은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는 분기점이다. 김영삼 정권은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통과시키려고 했다. 민주노조운동은 전국 정치총파업을 했지만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이 투쟁의 패배와 더불어 경제위기가 닥쳤다. 경제위기 논리는 신자유주의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도록 만들었다.
이 때부터 비정규직은 본격적으로 확산된다. 특정한 업종이나 특정한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 제조업이나 사무직에까지 비정규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은 왜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자 하는가? 왜 신자유주의는 유연화를 자신의 전략으로 하는가?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유연화 그 자체가 자본의 목적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쟁 과정에서, 그리고 위기를 경험한 자본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기를 원했다. 그래야 위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유연화’를 관철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유연화의 첫 번째는 ‘정리해고’이다. 일단 마음대로 짜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리해고는 이미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유연화의 길로 내몰기 위한 과도적 조치에 불과하다. 일단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은 다시 정규직 일자리를 구경하지 못할 것이다. 비정규직이 되면 정리해고는 필요 없다. 이미 비정규직이라는 것 자체가 불안정 고용이기 때문이다. 계약직은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자본에게는 간접고용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간접고용을 합법화하는 ‘근로자파견제’를 제한적이지만 통과시키고, 이후에는 이것을 더욱 확대하려고 한다.
그런데 자본은 ‘유연화’가 또 한편의 훌륭한 이윤창출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는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있는 현행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고용에 대한 불암감’을 무기로 하여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을 강요하고, 노조무력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도화함과 동시에 그에 맞게 자본가의 압도적 우위에서 새로운 노자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전체 노동자들이 일상적인 고용불안정, 초과착취로 인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계속 시달리게 됨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는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아직도 이 문제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파괴적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올라오는 데도, 여전히 ‘조직된 노동자들’ 중심의 활동 패턴과 노동조건 사수가 투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운동의 관성이 자본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그 틈새를 이용해서 자본은 노동자들을 분리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2003년 들어서 이제서야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 문제를 구조조정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이제서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을 고민하고, 이제서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적의식적 조직화를 고민하고, 이제서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공동투쟁을 고민한다. 그러나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투쟁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새롭고 힘차게 출발하자.
2.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
비정규직 투쟁은 여러 가지 범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고용안정과 권리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전선에 나선 것이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를 널리 인식시켰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 확산과 제도화를 저지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화하며, 노동기본권을 쟁취하는 투쟁이다. 이 투쟁은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세 번째는 정규직 안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정규직화 또는 일상의 차별을 철폐하는 투쟁을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차원의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발전시켜왔다. 투쟁의 역사를 서술할 때에는 이 세 가지 투쟁의 유기적 연관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입어 비정규직 운동이 발전해왔던 만큼 여기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서술하게 될 것이다.
(1) 1999년 비정규직 투쟁의 출발 -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
지금과 같은 폭발적 투쟁의 시초로 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투쟁과 재능교육교사노조의 건설을 꼽는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재능교육교사 노동조합도 1999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재능교육교사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특수고용’에 대한 인식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투쟁의 핵심 요구로서 ‘위탁계약’과 관련한 문제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중요한 부문으로서 ‘특수고용’ 문제에 대해 제기하는 기초적 문제의식을 갖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쟁한 시기는 하청들이 이미 구조조정 때문에 모두 길거리로 내몰렸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힘겹게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위한 파업을 진행할 때였다. 이 투쟁을 접하는 많은 동지들이 투쟁의 당위성을 인정하기는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반응이었다. 첫째는 구조조정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으로 전선이 이원화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때만 해도 비정규직 투쟁이 결국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정규직과 독립적으로 비정규직이 투쟁을 하는 것, 독자적인 조직화에 대한 불만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자본에 의해 분리되기 시작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의 권리를 위한 독자적인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의 선택이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많은 동지들이 비정규직 문제는 구조조정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세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때만 해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단히 생소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세우는 주장과는 다르게, 실감하고 있는 정서는 과거의 정서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정규직과 함께 투쟁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당위성을 내세워서, 독립적으로 노동조합을 구성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모하다’면서 질타하기도 하고,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문제의식보다는 현재의 차별을 극복하는 방식으로만 문제를 접근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2) 2000년 폭발적 투쟁의 시작 - 투쟁 과정에서 성과를 남기다.
1999년 재능교육교사노조를 필두로 해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비정규직 투쟁이 폭발한 것은 2000년이라고 볼 수 있다. 시설관리 용역노동자들의 설움을 딛고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에 나섰고, 대우 건물을 관리하는 시설관리 노동자들인 동우공영 노동조합도 파업을 시작했으며, 파견법에 명시된 “2년 이상 고용시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조항 때문에 파견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쫓겨남에 따라 방송사 비정규노조의 투쟁이나, 길병원 제니엘 노동자들의 투쟁 등이 만들어졌다. 대상식품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매우 질긴 천막농성투쟁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랜드와 롯데호텔 노동조합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힘차게 투쟁하며 성과를 남겼다.
이 투쟁들은 매우 힘들긴 했어도, 작은 성과들을 만들었다.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조합은 파업투쟁을 통해 임금인상과 단협을 쟁취했고, 이랜드와 롯데호텔에서도 비록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대상식품 사내하청은 원청과의 협의를 통해 비록 하청으로지만 고용을 승계할 수 있었다. 방송사 비정규노동자들도 비록 고용안정을 보장받지는 못했어도, 노동조합의 문제제기를 통해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성과를 남겼다. 재능교육교사노조도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임단협을 쟁취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화하려는 운동진영의 노력도 많이 있었다. 20여개의 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파견철폐 공대위’에서는 파견법과 간접고용의 문제를 폭로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해왔으며,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비정규기본권 공대위’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법개정 시도를 하는 등 비정규직이 얼마나 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지를 폭로하는 작업이 많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투쟁 역시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주체들의 힘에만 의지하고 있었고, 아직은 ‘비정규직들’의 문제로 좁혀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비정규직 보호’에 의존하는 경향도 생겨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투쟁이 엄호된 것은 소중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자본과 정권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예상하고 준비해왔던 것이 아닌 만큼 서툰 대응을 하기도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도 비정규직 투쟁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에 서툴렀다.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조합은 이후 용역재계약 때 투쟁으로 돌파하는 것 말고는 재계약 거부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청인 서울대의 사용자성을 어떤 방식으로 확증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큰 벽에 부딪히게 되어 있었다. 재능교육교사노조의 경우도 위탁계약이라는 신분상의 문제와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파견노동자들은 2년마다 한번씩의 주기적 해고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한계가 분명해지고, 이것을 돌파할만한 법적인 장치들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남은 것은 투쟁을 통한 돌파밖에 없었다. 그 투쟁이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 그 자체로부터 오는 노동기본권의 제약을 돌파할 만큼 강력한 것이어야 했다.
특히 자본과 정권도 1년 동안 폭발적으로 일어난 비정규직 투쟁을 경험하면서 대응논리와 탄압방식들을 세련되고 일관되게 구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인사이트코리아나 대송텍의 경우 불법파견 문제를 치고 들어가 지노위에서 승소하고, 정규직 전환을 인정받아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새로운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았지만, 곧 중노위와 법원에서 패소하는 등 자본도 일관된 대응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본은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투쟁이 전체 노동자 총단결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분리시켜 비정규직들을 더욱 열악한 조건으로 떨어뜨리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강화함으로써 정규직들을 달래고, 그것을 통해 분열책동을 가했다. 이랜드와 롯데호텔의 사례를 단지 신화적 사례로 만들고, 그것이 민주노조운동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치밀한 현장통제가 가해지기도 했다.
(3) 2001년 비정규직 전선형성 -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전국건설운송노조, 캐리어 사내하청노조
2000년도에 들어와서 비정규직 투쟁이 많이 형성되고,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지들이 사회화되자, 자본은 비정규직 확장을 제도화하고 비정규직에 관한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2000년 10월 노동부에서 발표한 ■비정규근로자 보호대책■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98년도부터 시행된 파견법을 확장하고, 계약직의 계약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며, 특수고용 노동자를 ‘준근로자’로 전환하여 노동권을 박탈한다는 것이었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빌미로 해서 아주 약간의 보호조치를 주는 대신 유연화를 더욱 확장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특위’ 논의 내용의 기반이 되었다.
이렇게 법 개악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본은 힘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양보하지 않았다. 2001년에 들어서서 결국 이러한 상황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비정규직 전선을 설치하는 힘있는 투쟁뿐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한국통신계약직 노조와 전국건설운송노조, 캐리어사내하청이 담당했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들이 어떻게 잘려나가는가, 이에 대한 공동투쟁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건설운송노조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쟁취라는 중요한 요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측의 분할 책동에도 불구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는 힘있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사측의 기도를 분쇄해야 했는데, 이 역할은 캐리어노동자들의 몫이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국건설운송노조의 투쟁, 그리고 캐리어사내하청노조의 투쟁은 단위사업장의 투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 투쟁의 요구를 얼마나 쟁취했나 하는 방식으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이 투쟁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받고, 이후 조직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자본과 정권의 일사불란한 책동에 의해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이 근원적으로 말살될 것인가를 가름하는 중요한 대표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세 가지 투쟁 모두 자본의 구조조정에 의해 노동자들이 희생당하게 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투쟁 주체들은 이 국면으로 투쟁으로 돌파하지 않는 이상 다른 돌파구가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자본과 정권이 비정규직들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전면적 압살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 노동조합들은 그 조건에도 불구하고 둘 다 합법적인 파업투쟁을 진행하고 있었고, 투쟁의 힘으로 그 합법성을 인정받고, 노동조합을 유지하고 요구안을 관철시킬 수 있는 조건을 일부라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비록 자생적 투쟁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투쟁 주체들의 의지는 매우 충천했다. 대중동력도 규모가 있었다.
그러나 주체들의 의지만으로 이 투쟁이 성사되거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이 투쟁 모두 그 자체의 의미를 민주노조운동에서 살리지 못했다. 자생적 투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2001년 정세가 갖는 의미가 부각되지 못한 채 2000년 폭발적인 비정규직 투쟁의 연장으로만 판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별 비정규직 투쟁으로만 이해되고, 이것이 전체 민주노조운동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그러나 자본은 달랐다.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에 경총과 전경련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고,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과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해서도 자본가 집단 전체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이 투쟁이 가져올 파장에 대비해왔던 것이다. 또한 캐리어 사내하청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강력하고 폭발적으로 조직하고,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도 공장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이 자본가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기에,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 도급계약해지를 꺼내들었다. 이 때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그래서 좀더 위협적인 파업투쟁을 만들 수 있었다면, 이후 사내하청 조직화의 필요성은 민주노조운동 진영 전체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 차원에서 “비정규직 투쟁승리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이 주체들이 노동기본권을 위한 투쟁을 함께 진행하도록 하고, 연대투쟁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했으나, 이 주체들끼리 함께 하는 몇 번의 공동집회와 한번의 집중투쟁을 제외하고는 큰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결국 이 투쟁들이 패배로 끝난 이후(캐리어 사내하청 노조의 투쟁은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우리는 특수고용직의 확산과 노동권의 박탈, 그리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과 간접고용의 확산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때의 투쟁은 말 그대로 처절한 것이었고, 비정규직이 중요한 투쟁의 주체라는 점을 인식시켰지만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화에 맞서 투쟁하거나 그것을 민주노조운동 전체에 사회화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4) 2002년 침체기 - 노동기본권에 대한 의식의 확산
대표적인 투쟁사업장이 무너지면서 남은 것은 패배감과 무력감이다. 그러나 투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자신의 일터에서 쉽게 쫓겨날 운명을 갖고 있는 비정규직들이기에 그런 조건이 닥쳤을 때 다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도의 투쟁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 투쟁이 왜 패배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싸움을 오히려 말리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막판에 몰려 투쟁을 선택한 이들에게 조용히 죽으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한진관광 면세점 노동자들, 하나로 테크놀로지, LG 화학 사내하청인 남성기업노동조합은 뚫고 나갈 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투쟁 주체들의 의지에 기대서 끈질기게 버텨야 했다. 그러나 자본은 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민주노조운동의 연대투쟁도 활발하지 못했다. 이 투쟁은 자그마한 노조의 작은 투쟁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투쟁했던 노동자들은 개인들의 결의와 분노만을 남긴 채 투쟁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 투쟁이 모두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막판에 몰려 투쟁을 선택한 이들은 그 투쟁의 끈기만큼 이후 투쟁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씨앗들이다. 자본이 강하면 강할수록, 설령 노동조합이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하더라도 개인들의 가슴 속에 있는 투쟁의 의지를 완전히 꺾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자본과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풀 꺽이고 난 후 그 동안 자신들이 확보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제도를 고치고자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판례가 속속 나오고, 애써 쟁취한 단협이 휴지조각이 되는가 하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원청은 배를 째는 것으로 일관하고,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작은 승리를 했던 2000년의 투쟁 주체들도 힘겨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롯데호텔이나 이랜드에서도 애써 쟁취한 정규직화 성과가 사측의 공세에 밀려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체들이 힘들어졌다고 해서 비정규직 투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투쟁 주체들 노동기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공동투쟁의 요구가 제출되고, 민주노조운동 전체적으로도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절실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단위사업장이 힘들고, 내부를 추스르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서 ‘노동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수고용 대책회의’ 차원에서 공동행동을 모색하고, 2002년 10월 20일에는 ‘특수고용 노동자 한마당’을 열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쟁취’에 대한 결의를 모으기도 했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기본권 쟁취’를 자신의 과제로 갖고 투쟁을 조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정규직 노조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갖고 함께 투쟁하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각 노조에서는 단협에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철폐’ 조항이나, ‘정규직화’ 조항을 제출하기 시작했고, 기아자동차노조 광주지부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거나, 계약직으로 전환시켰고, 이후 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핵심적인 과제로 제출하고, 조직활동가를 만들어내고,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계획을 조금씩 세우고 있다.
(5) 2003년 전체 노동자 총단결로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전면화하자.
2003년을 맞았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기력하다. 예전과 같은 위력을 갖고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도 머리 속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여전히 그것도 예전과 같은 패배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지난 투쟁의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처와 고통은 충분히 사회화되었다. 그런데 자본과 정권은 바로 그 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이것의 사회화)을 이용하고 있다. 이 기회를 오히려 적극적인 비정규직 확대의 호기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그마한 보호조치에라도 목을 매달고 싶은 심정이 되어 자본이 비정규직을 확대하기 위해 조그마한 보호조치를 내미는 것에 기대기도 한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보호란 정말 값어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파견노동자가 2년마다 한번씩 해고되면 안되니까 기간을 연장해서 3년마다 한번씩 해고당하도록 해주겠다고 하거나, 4대 보험을 일부 적용해주겠다고 하거나(원래는 당연한 권리인데도 선심 쓰듯이),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단결권을 일부 인정해주겠다고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보호’ 명분은 반드시 뒤에 조건에 딸려있다. 더 유연화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파견업종을 더욱 확대 적용하자고 이야기하고, ‘유사근로자’ 조항을 만들어서 이제는 ‘근로자가 아닌 자’들을 더욱 확장시키겠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노림수이다. 멀쩡한 사람을 실컷 두들겨 패서 쓰러뜨리고, 약을 몇 군데 발라주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식이다. 그런데 ‘약이라도 발라주니 고맙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몇 가지 보호 조치 명분으로 유연화의 확대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까지의 투쟁이 단지 투쟁하는 주체들만의 문제였듯이 지금 정부과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내밀고 있는 유연화 조치들도 이미 지쳐버린 투쟁 주체들의 결단에 의존하고 있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유연화의 문제, 노동기본권의 문제는 결국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과제이지, 누군가에게 떠맡겨진 짐이 아니다. 만약 ‘파견법 확대’와 ‘유사근로자 규정’이 받아들여지면, 그것의 결과는 현재의 비정규직들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규직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그래서 투쟁 주체들이 지쳐 있는 이 시점에서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우리 모두의 과제로 설득하고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이것을 자기 과제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투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또 하나의 교훈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기획된 조직과 기획된 투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투쟁하는 대표선수를 하나 더 만드는 문제로 사고된다면 아무리 열심히 기획해서 조직을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투쟁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획된 조직과 투쟁은, 투쟁의 중심을 비정규직 당사자가 갖고 있더라도, 이것을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한판 승부로 기획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당사자가 아무리 인원이 많고 파괴력 있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전체 자본과 정부의 총단결 전선에 의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3. 투쟁의 역사에서 새겨야 할 바
지금까지의 투쟁을 통해 제출되는 우리의 과제를 확인해보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동지들은 그 동안 투쟁을 이끌어오기도 했고, 그 안에서 새로운 투쟁의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 투쟁이 한번으로 그치고 말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 모든 노동자들이 경험해야 할 문제들이고, 앞으로도 투쟁을 이끌어가야 할 우리들이기에 과제를 명백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 투쟁 의미를 사수하자.
우리는 지금까지 힘든 투쟁을 이끌어왔다. 이 투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투쟁 과정에서 전술상 오류도 있었을 것이고, 투쟁 주체들의 의지와 현실이 괴리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투쟁 자체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특히 투쟁 주체들이 자신의 투쟁을 객관화하고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투쟁의 의미를 훼손하거나 투쟁에 대해 단순한 이분법으로 결론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즉 요구는 이래야 한다거나, 투쟁전술은 이런 방식이어야 한다거나 하는 단순한 일반화는 매우 풍부하고도 역동적인 투쟁의 과정과 의미를 훼손하게 된다. 특히 그러한 투쟁에 대한 평가는 때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현실의 조건을 근거로, 몇 가지 제도개선으로 제한하거나,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에 머무르게 하고, 승리할 수 없었다는 사실 그 자체로 투쟁을 무모한 것으로 폄하하는 데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투쟁해왔던 의미를 다시 검토하고, 비록 패배의 과정에 놓여있었을지라도 그 투쟁이 우리 운동에서 가졌던 의미를 사수하는 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2) 새로운 투쟁의 역사, 비정규직 대중투쟁을 만들자. 그를 위한 씨앗이 되자.
지금까지는 자생적으로 투쟁이 만들어지고, 그 주체들이 힘겹게 투쟁을 만들어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러한 투쟁을 반복재생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비정규직 투쟁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퍼져있다. 지금까지 투쟁했던 많은 동지들이 현장에서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다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후 새롭게 비정규직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이제는 현장에서부터 광범위한 조직화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투쟁이 마무리 된 후에는 뿔뿔이 흩어지거나 노동조합의 일상활동으로 돌아가면서 우리의 투쟁을 널리 확산시키고 대중적으로 조직하는 준비를 잘 못하고 있다. 이것을 아우르는 조직화 계획을 제출하고, 이제는 대중적 비정규직 투쟁을 만들어 새로운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를 써야 한다. 투쟁해왔던 동지들이 조직화의 씨앗이 되자.
(3)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은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제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표적인 투쟁사업장의 힘에 의거해서 투쟁이 만들어지고, 노동기본권 문제도 그 노동자들의 절실한 문제로만 인식되면서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진행되는 비정규직 확산과 노동기본권 무력화의 칼날은 현재의 정규직을 향해있다. 예를 들어 파견법을 확대하거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유사근로자’로 전환시키거나 하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파견노동자와 유사근로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안이다. 그리고 이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을 제한하기 위해 유사근로자의 경우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경제법상 관련 법규를 적용하게 하기도 하고,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단기계약직을 양산하도록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투쟁을 통해 쌓아올렸던 민주노조운동의 소중한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조치들이다. 우리의 노동권 전반에 대해 공격해오는 자본에 맞서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의 권리가 지켜진다.
(4) 이제 정규직들의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공동투쟁을 만들자.
정규직들이 이제서야 조금씩 투쟁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사례만이 아니다. 민주노총에서도 조직활동가를 양성하고 조금씩 조직화와 투쟁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주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계획들이다. 지금까지 선도적으로 투쟁을 이끌어왔던 동지들은 이제 지쳐서 후퇴하지 말고, 새롭게 투쟁을 일어서는 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연대의 기풍을 만들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을 막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주요 투쟁에 대해 연대하고, 그 투쟁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조운동의 노동권 쟁취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연대는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투쟁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투쟁이 단지 비정규직들만의 것이 아니라, 전체 신자유주의적 유연화에 반대하는 투쟁전선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정규직을 세우고,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로서 투쟁을 선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5) 반드시 승리한다. 역사의 의미를 믿고 나아가자.
투쟁이 개개의 전투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쟁의 역사는 ‘결국 우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록 개개의 투쟁에서 패배했을 지라도 우리 비정규직 운동은 전진해왔다. 소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뭔지 모른 상태에서 투쟁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 투쟁을 말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조금씩 투쟁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 투쟁들은 잠들어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깨우고 무력감에 젖어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하는 자만이 인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투쟁은 자본과 정권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비록 기만적인 방식일지라도 일정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비록 투쟁한 동지들은 지쳐 쓰러졌지만 그 뒤를 이어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전선에 나섰다. 그리고 지금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슴 속에는 인간다움을 향한 열망과 투쟁의 의지가 들끓고 있다. 비록 계기를 만나지 못해 투쟁에 나서고 있지 못한다 하더라도 곧 이 열망은 거대한 투쟁의 파도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낙관한다. 그렇지만 그 투쟁의 파도가 일기 시작할 때 그 때를 대비하면서 우리가 열심히 조직하고 투쟁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파도는 비정규직 투쟁의 놀라운 진전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고 투쟁하고 조직하자.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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