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들끓던 비정규노동법 개악의 통과가 2월말 사람들을 속썩이며 다가왔었다.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투쟁의 전열을 다듬고 기다리는 사이 지치고 소진하기를 노리고 있는 것인지 결국 비정규노동법 개악 통과는 2월을 또 넘겼다,
그리고 4월 비정규노동법 개악의 시도는 다시 우리에게 남아있다. 싸움을 앞두고서 불안하고 초조해진 심정보다는 힘없는 눈동자에 허무한 그림자가 우리들을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닐까.
2월 말 어느 여배우의 자살이 있었다. 이 배우의 죽음에 대해 언론은 대부분 우울증이 원인이라 진단내렸고, 우울증의 심각함에 대해 연일 심각한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우울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우울증을 유발하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가 더욱더 중요한 사실이다.
4월달에 다시 비정규노동법 개악을 강행처리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있었지만,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는 3월에 많은 활동가들은 시대의 유행처럼 집단 우울증에 걸려있는 듯하다. 물론 총파업으로 돌파하자, 노개악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말들과 작지만 분주한 실천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남한 운동진영의 무기력한 집단 우울증 자체가 아니라 그 원인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고민과 진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20년대 어느 작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을 '술권하는 사회'라 했던 것처럼, 빈곤이 심해지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경제위기 이후로 늘어난 노숙자가 죽어가고, 70%의 비정규직을 100%의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그래서 민중의 대다수가 실업자가 아니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2005년 이 땅의 현실을 '우울증 권하는 사회'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2005년 3월은 4월보다 더 잔인한 달이 되고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허속에 꽃이 피듯 3월을 희망을 꽃피워서 4월을 투쟁의 꽃으로 덮어버리는 실천을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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