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참 많이 고민했었다. 사내하청노동자들, 아직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것도 아니고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도 아닌, 이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난감했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전주지부 간부들을 만나고 교육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을 만나기 직전까지 머릿속을 맴돌았던 이 고민은 막상 하청노동자들 얼굴을 보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이런 교육이 처음이라 그런지 모두들 주춤거리며 교육장소로 들어오는 노동자들, 나이 많은 사람부터 아직 젊은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사림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나....' '평소에 말붙이기도 왠지 어려운 정규직노조에서 왠 일인가' 뭐 이러한 표정들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하청, 비정규직이란 딱지가 붙어있어도 이들은 노동자였던 것이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단협을 준비하면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개선을 내용으로 하는 안을 마련했다. 전주지부에서는 상반기에 정규직 조합원을 교육하는 시간에 콘베어가 정지됨을 이용하여, 사내하청노동자 전체를 라인별·부서별로 교육할 계획을 세웠다. 교육시간에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강의를 하고 비정규직 관련 임단협 요구안을 가지고 하청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것이었다. 오전·오후 2시간씩 배치된 교육은 2주일정도 진행되었고 전주공장 전체 사내하청노동자 600여명과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2주간의 교육이후 정규직노동조합은 6월 18일 사내하청노동자 체육대회를 개최하였고 이 자리에는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참가를 했다. 더욱이 고무적인 것은 6월 20일 전주지부 임단투 결의대회에는 많은 비정규직이 참가를 했다. 비정규노동조합이 있던 것도 아니고 노동조합을 준비하는 모임이나 투쟁체도 없지만 대중들이 스스로 모인 것이다.
1. 비정규직·정규직 공동투쟁을 위한 그 시작의 하나 ; 하청노동자교육!
비정규직 투쟁이 일반화되면서 특히 사내하청노조의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이 확산되고 있다.
공동투쟁을 위하여 정규직에서 무엇을 시작해야 할 것인지 누구나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고민을 통한 정규직 활동가나 노동조합의 사업의 시작점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이다. 이는 노동조합에서 가장 먼저 고민하고 실행될 수 있는 사업이다. 임금과 일상에서 나타나는 차별을 단체협약을 통해서 또는 현장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의 요구로 줄여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조직화 투쟁에 관한 계획없이 진행되는 정규직의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정규직과의 간극을 줄이면서 당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상승시킬 수 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쟁취하는 투쟁에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정규직 노동조합에 기대게 되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즉 비정규직 주체가 조직되지 못하고 정규직은 투쟁을 대리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두번째는 정규직 노동자들 즉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과 선전이다. 비정규직 투쟁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넘어서서 정규직 노동자 자신의 이해와 요구로 왜 우리 현장에서 비정규직철폐 투쟁을 하여야 하는지를 교육하고 선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현장에서 똑같이 일하는 노동자가 나와 다른 대우를 받아서야 되겠는가'라는 심정적인 동의는 현장의 노동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직에 대한 교육은 정규직이 심정적 동의를 통해 비정규직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고 비정규직 노동조건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의 사업을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하다. 비정규직 철폐가 철저하게 정규직 자신의 이해와 요구와 왜 결합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선전·선동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교육하고 조직하였을 때만이 투쟁의 순간과 선택의 순간에 비정규직과의 공동투쟁이 만들어 질 것이다.
세 번째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기 위한 하청노동자 대중교육과 조직화 사업이다. 이것은 실제로 투쟁의 일 주체가 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이들을 민주노조운동에 포진시키기 위한 사전 과정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노동조합의 의미에 대해 선전하고 비정규직 스스로 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함을 교육하는 장으로, 정규직에서 진행하고 있는 비정규직사업과 투쟁에 대한 선전과 요구를 수렴하는 공간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 공동투쟁을 준비하면서 정규직 활동가가 시작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앞서 우리의 고민에서 반드시 선행될 것이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에 관한 총제적 고민과 계획 속에서 위의 세 가지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조직화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을 위한 위와 같은 사업들이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총체적인 계획 없이 진행되는 사업들은 그것이 아무리 그 자체로서 유의미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개별성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총체적 계획의 주체는 정규직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조직화계획을 수반하지 않은 교육과 간담회는 항상 비정규직의 상황에 대한 점검과 그들의 불만지점을 확인하는 수준 이상의 어떠한 내용적 진전이 있겠는가.
2. 비정규직 노동자 교육이 가지는 의미
비정규직·정규직 공동투쟁을 고민하면서 정규직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은 그나마 이루어져 왔다.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노동조합에서는 비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사업과 투쟁 고민하고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대중적 간담회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전주지부의 전체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교육 사업은 최초로 시도된 사업이고 그 의미 또한 매우 크다. 그 의미를 몇 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과 선전은 이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는 중요한 사업이다.
둘째,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정규직 활동가를 비롯한 노동조합 간부들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인식변화와 조직화의 절실함을 일깨우게 하는 사업이 될 것이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고통과 요구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상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크다. 상태를 이해한다고 함은 단지 심정적인 이해가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일 주체인 비정규대중의 상태를 면밀히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조직화 투쟁의 과정에서 너무나 중요한 기준과 점검이 될 것이다.
셋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의 또 하나의 큰 의미는 바로 대중적이라는 것에 있다. 그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나 비정규직 내의 투쟁위원회 등과 같은 조직이 건설되어 왔지만 소수주체의 결의로 조직되어 오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다. 이것은 공식적 조직으로 건설되기 전까지는 이 주체들이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사업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공개 후 대중적으로 엄호 받을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규직이 광범위한 비정규직 대중에게 조직화와 투쟁에 관한 문제의식을 던지는 이와 같은 사업은 노조건설시 이를 대중적으로 엄호 받으며 조직기반을 넓혀 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사업이 정규직 노동조합의 공식성을 바탕으로 한 힘을 가지고 진행된다면 하청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소통과 교류의 구조로서 이후 하청노동자 조직과 투쟁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교육사업과 같은 비정규직 사업을 통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동지적 신뢰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사업과 투쟁을 통하여 준비되는 것이다. 실제 이번 비정규직 교육을 통하여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규직에서 말로만이 아닌 교육과 간담회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많은 지지와 연대를 표현했으며,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과 참여로 정규직들은 많은 신뢰감과 조직화의 계기를 보게되었다.
다섯째, 이 교육이 갖고 있는 시기적 의미이다. 이 교육이 준비·진행되었던 시기는 현대자동차 아산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울산에서는 비정규직 투쟁위원회가 건설되어 활동중인 때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전주에서 당장 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아산과 울산에서의 투쟁을 알려내는 것을 통해 비정규직 스스로가 주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교육 이후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체육대회, 집회 참여 외에도 친목모임수준일지라도 업체별 모임, 라인별 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3.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전주지부 교육사업의 이후 과제
전주지부의 교육은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최초로 시도된 비정규직에 대한 대중적 교육사업이라는 것에서 의미가 크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번 사업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교육사업 이후에 배치된 체육대회와 공동 임단투 결의대회는 아주 커다란 성과이다. 무엇보다도 사내하청 노동자들과의 정기적인 간담회는 많은 가능성들을 열어놓은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조직화의 전반적인 계획 속에서 배치한 사업이라기 보다는 교육사업이 선행되고 이 과정에서 조직화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공동 임단투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서 조직화는 이후 과제로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불붙던 시기였다. 아산공장에서 울산공장에서 일어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주공장 하청노동자들도 주목하고 있었으며 노동조합과 투쟁에 대한 열기가 조직적으로 준비되지는 못하였지만 심정적으로 올라오던 시기였다. 정규직에서 고민한 공동 임단투의 문제의식을 대중의 대다수가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기에 총체적인 계획 속에서 배치되지 못했던 이번 교육 사업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 사업이 정규직 노조와 활동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변화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고 이에 기반한 조직화 고민이 이제 전주지부에서도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교육사업 이후의 성과를 이어 갈 수 있는 후속사업들이 기획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간담회와 교육도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이제는 사내하청 대중에 대한 사업이 있어야 한다. 임단투의 성과를 대중적으로 알려내는 것을 물론 이것이 현장에서 관철되도록 사내하청노동자 스스로가 감독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정규직 노조의 노력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임단협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현장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현장에서의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행동을 만들어 내야 하겠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의 주체를 세워내고 지원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이는 비정규직을 대상으로만 하는 사업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정규직에 대한 교육·선전과 일상투쟁의 배치를 통해 신뢰와 연대의 기반을 일상적으로 넓혀 가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차원에서 이러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기 위한 공식적인 사업 기구를 설치하여 비정규직 투쟁을 전담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4. 마치며
비정규직의 투쟁, 특히 올해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불붙듯 일어났다. 이에 따라 많은 쟁점들이 고민들이 운동진영에 던져졌다.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 공동투쟁의 고민은 모든 활동가들의 특히 정규직 활동가들의 과제로 남겨져있다. 공동투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만큼 이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는 공동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실제적인 계획은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공동투쟁, 그리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조직화 투쟁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 속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의 작은 참여를 유도하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의 의식화 조직화의 과정으로서 사업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정규직 활동가와 노동조합이 정규직 비정규직노동자 이 광범위한 대중에게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던지면서 비정규직이 조직되고 투쟁이 일어날 시기에 이것이 대중적으로 지켜지게 만드는 것이 공동투쟁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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