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과와 의의
끈질긴 연대로 정규직화와 직접고용을 쟁취해 내었다.
16대 임원선거 직후 LCV 합의서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승합라인에서는 일부 대의원들이 물량감소로 인한 UPH 조정을 통해 한시적 잔업보장과 비정규직의 정리를 노동조합이 떠 안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노조 지부는 부서 현안문제를 개별적으로 떼어서 대응하다보면 사측의 구조조정, 광주공장 축소 또는 폐쇄하기 위한 계획에 대해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비정규직 철수 후 정규직의 전환배치-UPH조정과 노동강도 강화, 고용불안 극대화, 노동조합무력화 는 물론 인력구조조정을 가시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주공장의 장기적인 전망을 투쟁으로 확보함으로써 총고용 보장을 쟁취하는 것만이 부서 현안과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고용안정투위를 건설하여 투쟁하였다.
1월 초 25명 정규직화에 이어 4월 4일 1/4분기 고용안정위원회를 통해 04년 5월까지 30만대 증산을 골자로 하는 광주공장 전망을 큰 틀에서 합의하였고, 4월 12일 지부 고용안정소위원회에서는 ‘비정규직 인력운영 및 처우개선 건’과 관련하여 130명 정규직화, 300명 계약직으로 직접고용을 쟁취하고 예고되었던 2차 대규모 정리해고를 막아내었다. 10월 21일 계약직 근무자 중 40명을 화성공장에 정규직화 시킨 데 이어 11월 20일 최종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하청 비정규직투쟁을 일 단락지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광주공장 전망을 밝히는 것만이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안정 뿐만이 아니라, 하청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지부의 초기방향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고 본다.
비정규직 고용제한과 정규직화 및 차별철폐의 토대를 단체협약으로 체결하였다.
단협과 관련하여 비정규직의 개념을 명문화한 것과 비정규직의 직접라인 투입 시 노동조합과 합의, 신규채용 시 우선채용 등을 성과로 남겼다.
이러한 성과는 03년 금속연맹 단협안에 대폭 반영됨으로써, 자동차업종의 타 사업장 뿐만 아니라 여러 대공장의 비정규직 투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아직 하청노조의 조직화 및 정규직화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화성공장과 소아리 공장에도 유리한 위치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정규직노조 - 하청노조 - 회사 간 3자 합의를 이끌어 내는 첫 사례를 남겼다.
또한 단협 별도회의록에 따라 하반기 정규직노조-하청노조-회사간 3자 실무회의를 구성하여 11월 20일 최종합의를 이끌었다. 이는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에서 정규직 노조의 몫이 무엇이며,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가를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하청노동자들의 외로운 투쟁을 전개하다가 보상금을 지급 받고 투쟁을 접거나,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무기력하게 자연 소멸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여 이번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은 원청 사용사업주가 하청노동자에 대해서 ‘사용자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교섭 또한 해태하려는 관행이 만연되어있는 조건을 정규직 노조와 하청 노조간의 꾸준한 연대로 돌파함으로써 3자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으며, 노동자간 계급적 단결의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지부 집행간부들은 노조 당선 이전부터 “비정규직 철폐와 이를 위한 조직화”를 역설해 왔으나, 구체적인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노조 선거에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하청 노조 건설과 함께 진행되는 사측의 공세에 다소 당황했었다. 이전의 많은 비정규직 투쟁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비정규직 투쟁은 “실패하는 투쟁”, “답 없는 투쟁”이라는 사고가 확산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실천에 옮기려 하지 않으려는 기피현상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적인 연대 투쟁으로 소기의 성과를 내옴으로써,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되었다. 또한, 최근 조합원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비정규직 투쟁이 조합원의 고용불안 요인으로 다가서지 않겠다”는 생각을 조합원들에게 확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2. 한계와 과제
투쟁이 아닌 협상에 의존한 문제해결방식으로 인해 전체 조합원과 함께 하는 성과라기 보다는 노동조합만의 성과로 남았다
분명 정규직 노동조합의 부단한 노력과 하청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정규직화, 직접고용, 비정규직 관련 단협 등 소기의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가시적인 결과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투쟁과정에서 얼마만큼 정규직 조합원들의 의식변화를 가져왔었는가를 냉철히 평가해 보아야한다. 설사 광주공장의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했다해도, 비정규직의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몇 년 후 자동차산업이 다시 불황에 치닫게 되거나, 예기치 않게 중남미 등 해외시장의 판로가 또 다시 축소되는 경우에 사측은 언제든지 인원삭감과 비정규직 투입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조합원들이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의 밀접한 연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전히 비정규직 도입을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자신의 고용안정판으로 비정규직을 사고하는 방어적 자세를 취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의 변화는 정규직화를 몇 명 했느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러한 잣대로 01, 02년 광주지부의 비정규직 투쟁을 평가해 본다면, 부족한 면이 많다 할 것이다. 조합원의 의식변화를 수반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투쟁을 통해서, 하청노동자들을 노동자 대 노동자로 대면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대중적인 투쟁은 없었다. 즉, 이번 비정규직 투쟁은 조합원들과 함께 한 투쟁이 아닌 노동조합의 협상에 의존한 문제해결 방식이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투쟁으로 정면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에 의존하는 것은 현 16대 집행부가 애초부터 의도했던 문제해결 방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투쟁 아닌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었던 데는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 첫째, 노동조합과 현장 제 조직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투쟁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도, 단기간에 준비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정규직 조합원이 갖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우월감, 업체 직원일 뿐이라는 이질감과 차별의식 등 자본이 인위적으로 조장해온 노동자간 분열의식은 손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하청업체, 영세사업장을 여러 해 동안 전전해오다가 기아차와 같은 대공장 정규직으로 취업한 몇몇 노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잘 모른다. 정규직들이 연말 성과급으로 몇 백만 원씩 받아 가는 돈은 사실 하청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일부분임을 정규직들은 모른다.
더구나, 광주공장의 전망 부재와 이로 인한 고용불안 심리는 조합원들로 하여금 하청노동자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사고하게 만들고, 사측 또한 이러한 논리를 지속적으로 현장에 유포시킨다. 그렇다면, 16대 집행부뿐만이 아니라, 이전의 노조 집행부에서 그리고 현장 제 조직들이 하청노조가 출범하기 전부터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꾸준히 전개함으로써 정규직 조합원들의 의식 변화를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이러한 투쟁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하청노조가 불쑥 건설되니까 지부는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하청노동조합 설립과정에서도 하청노조 건설 논의를 함께 해왔던 모 현장조직 동지들은 16대 집행부와 시간을 갖고 논의하지도 않았다. 결국 지부도, 하청노조도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을 맞이하였다.
반면 사측은 하청노조 건설 움직임이 포착되었을 때부터 사찰문건을 작성하면서까지 치밀하게 준비하였고, 하청노조가 건설되자마자 현장 분위기를 장악하면서 노동조합을 흔드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현장은 술렁였고, 노동조합은 고립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의원들과 현장 제 조직들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일부 조직은 사측의 노동조합 고립전술에 편승하면서 대의원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했다. 사내하청노조는 ① 노동조합 회의실을 사내하청노조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는 문제 ② 공동출근투쟁, 노조 가입 활동 공동 조직 ③ 공동투쟁체 건설 ④ 사내하청 노조 간부 현장 순회 시 집행부 및 대의원 동행 등의 연대 요청을 노동조합에 의뢰하였으나 임시대의원대회에서 ④ 번 항 중 집행부 동행만 제외하고 거부되었다. 결국 “노동조합 대 노동조합으로 연대하겠다”는 방침아래 상집 간부들이 하청간부들과 함께 현장순회를 하고, 간담회를 진행했으나 대의원들과 현장 제 조직들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사측에 의해 장악된 현장 분위기를 되돌릴 순 없었다.
노동조합은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없어졌다. 결국 고용투위로 방향 전환하면서부터는 비정규직 문제를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은 조합원과 함께 하는 적극적인 현장투쟁보다는 수세적인 위치에서 협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해야만했다.
■ 둘째, 하청노조가 초기 조직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핵심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하청노동조합은 노조 건설 초기 광범위한 조직화에 실패하였다. 하청노조 출범 이후 지부 집행간부와 대의원들에게 하청 조직화에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미 현장은 사측의 논리에 넘어가고 있었다. 결국 노동조합 간부들이 현장 밖으로 밀린 상황에서 미약한 조직력으로 사측의 공공연한 블랙리스트 협박과 재고용 시 불이익 협박 공세로부터 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투쟁의 주체는 일차적으로 하청노조이다. 하청노조는 초기 조직화의 실패로 현장을 잃음으로써 시종일관 고립분산적인 투쟁을 해야만 했고, 협상의 주체로 서지 못했다. 독자적이고, 위력적인 투쟁을 통해 협상력을 키워내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정규직 노조의 협상력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미 광범위한 투쟁, 파업 등의 대중투쟁을 통해서 원■하청 노동자들이 서로 노동자로서 만나고, 논쟁하며, 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정규직 노조가 협상의 주체로 서면서 사내하청노조의 주장과 협상 결과에 대한 차이로 갈등이 증폭되었다. 하청노동조합은 무엇보다도 1차적으로 자신의 조직력과 투쟁력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했을 때만이 정규직노조에게 당당히 노조 대 노조로 연대투쟁을 호소할 수 있으며, 협상의 주체로 설 수 있다. 더구나 원청 사용사업주가 법을 들먹거리며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교섭을 해태하는 관행이 보편화되어있는 불리한 조건에서 하청노조가 자신의 조직력에 근거한 강위력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서는 교섭력을 획득할 수 없을 뿐더러 정규직 노조 또한 연대하는데 분명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셋째, 임단협 시기를 전면적으로 이용하는 전술을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업은 ‘노동자계급의 학교’이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분할의 벽을 깨부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노동자 대 노동자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매개는 파업이다. 이는 AC닐슨, 이랜드, 롯데호텔 노조 투쟁 등 많은 투쟁 사례에서 확인된 전술이기도 하다. 파업을 준비하는 기간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하고, 파업 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광범위하게 조직화해서 파업에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파업이라는 열린 현장 분위기 하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정규직 조합원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을 넘어서게 되며, 이질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된다. 그리고 왜 비정규직이 조직되지 않으면 안되고, 왜 함께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2월경 노동조합에서는 몇 가지 유리한 지점을 착목하고 있었다. 첫째 2년 이상자 문제와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사측을 압박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고, 둘째 비엔날레, 월드컵, 지자체 선거 등 정치권과 사측을 부담스럽게 할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임단협 시기에 투쟁력을 배가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정녕 임단협 시기가 닥쳐오자 하청노동자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못했다. 물론 임단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실에서는 “6월 월드컵과 임■단협 투쟁시기에 정규직 노조의 현장권력 쟁취 실천단에 비정규직 조합원을 합류하여 투쟁계획을 잡아가며 정규직 조합원 또는 대의원과 사내하청조합원과 함께 할 수 있는 임투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계획은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파업을 매개로 한 공동투쟁을 통해 조합원들로 하여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전환을 하게 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임단협 시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광주공장 비정규직 문제를 기아 전체 공장의 문제로 확대하는 데 실패했다.
임단협 시기 광주지부는 민주노총 모범 단협안을 수정 제시하였고, 단협안 32조와 관련하여 본조 차원이 아닌 지부차원에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논의하였다. 무엇보다도 투쟁이 아닌 협상중심의 문제 해결 방식이 문제였기도 하지만, 하청노조 초기부터 이 문제를 기아 전체의 문제로 받아 안고, 본조 차원에서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진행했어야 했음에도 그렇지 못했다. 결국, 임단협 시기에 하청문제는 광주지부의 현안으로만 국한되었고, 급기야 사측은 광주지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임단협이 끝나지 않는다는 여론까지 조작하면서 궁지로 몰고 말았다. 소극적인 태도가 오히려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임단협 기간이었던 02년 7월 18일, 노동조합은 사측과 “사내하청노조 문제는 광주공장에서 광주지부 또는 당사자와 성실히 합의”하는 것으로 일단락한다. 이로서 광주공장으로부터 불거져나온 비정규직 투쟁이 전 공장으로 확대되는 것은 차단되었다.
기아자동차에는 3개 공장 인원 20,387명의 10.8%에 이르는 2,217명(광주 211, 소하리 442, 화성 1,56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02년 8월 현재) 비정규직 상황이 화성공장의 경우 가장 심각한 것이다. 광주지부에서 하청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할 시에 전 공장으로 확대해야 했으나, 이 문제는 향후의 과제로 미루어졌다.
구조조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민첩한 대응이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 가는 주요한 열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01년 12월 31일 401명의 하청노동자들을 계약해지에 맞서 사측의 의도를 간파하고, 구조조정에 대한 면밀한 준비와 투쟁을 배치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월 12일 일부 정규직화, 직접고용 합의 이면에 새롭게 비정규직 투입을 합의했던 것도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우리는 98년 아시아 부도 상황에서의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경험, 한라중공업 부도 상황에서의 사내하청노조의 투쟁 등 부도난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아왔다. 또한 신호제지 노조처럼 워크 아웃 상태에서 10개월 이상 임금이 나오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조합이 도급소위를 꾸려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까지 조직했던 모범을 보아왔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조 간부들과 현장 활동가들의 단호한 의지만큼이나, 사측의 구조조종에 대해 얼마만큼 구체적으로 대응해 가느냐가 관건임을 이번 투쟁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대의원 조직화 및 현장 제 조직간의 연대활동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번 하청관련 비정규직 투쟁과정에서 12월 7일 임시대대에서 하청노조 연대가 부결되는 등 대의원 조직화와 현장 제조지간의 연대활동을 이끌어 가지 못한 큰 한계를 보였다. 또한 하청노조 초기 대의원들뿐만 아니라 현장조직을 끌어안지 못함으로써 비정규직 투쟁을 빌미로 한 사측의 노조 고립화 전략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것은 이후 노조와 현장간의 고리를 형성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한계로 작동하였다.
비정규직 문제, 근골격계 문제 등은 자본의 구조조정의 집약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와 현장통제, 노동조합 무력화, 임금 유연화, 노동자 건강권 침해 등의 문제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사안들이다. 적어도 이러한 문제들만큼은 현장 제 조직들이 책임있게 논의하고, 정치적 차이와 조직을 넘어 공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블랙리스트 문제, 사찰문제는 끝까지 대응했어야 했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한라하청에서부터 캐리어하청, 기아하청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터진 문제였다. 하청노조 초기부터 사측은 현장 관리자들을 통해 “캐리어하청처럼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취직을 못할 수 있다”는 협박을 통해 조직화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이 부족하였다. 또한 임단협 시기 시민대책위가 발표한 사측의 사찰 문건에 대해서도, 사회적이고 전국적인 투쟁으로도 만들어 가지 못했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압살하기 위한 정권과 자본의 가장 잔혹한 노동자 탄압책이었다. 90년 후반 비정규직 노조가 출범될 때마다 블랙리스트 악령은 되살아났고, 이제는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조를 무력화하고 현장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리스트 작성이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 두산중공업에서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노동조합을 말살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있음이 만천하에 밝혀졌으며, 이와 비슷하게 기아차 노조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사찰이 진행되었음이 드러났다. 블랙리스트와 노조 및 활동가 사찰의 인권 침해는 단위사업장이 아니라, 민주노총 중앙 차원에서 사회문제화 시켰어야 하는 문제였다.
3. 향후과제
현 계약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계획이 시급히 필요하다.
4.12 사측과의 합의를 통해 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한시적인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하였다. 물론 04년 5월 신차도입 시 인원이 필요할 경우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그러나 사측과의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지는 여전히 현장에서 노동자와 사측간의 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이들 계약직의 정규직화가 광주공장의 비정규직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시급한 정규직화가 달성되지 않는다면 몇 년간의 투쟁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간접부서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4.12 합의에서 직접고용 및 정규직화로부터 제외된 비정규직이 간접부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도 정규직화를 위한 구체적인 고민과 전략이 필요하며, 처우개선과 병행하는 조직화를 위한 실천들도 필요하다.
기아자동차 전체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확대하고, 사회적 투쟁으로 상승시켜내야 한다.
광주공장의 비정규직 투쟁을 기아자동차 전체의 문제로 확산시키지 못했음을 평가했다. 또한, 비정규직화를 포함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전략은 개별 자본에 대한 단사 차원의 투쟁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몇 년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알게되었다. 더구나 현대자본의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방향이 기아차-현대차를 총체적으로 아울러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별도 법인 설립을 통한 부품 이관이나 완성차 - 부품 업체간의 관계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단사를 뛰어넘는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계획이 필요하다. 부품업체를 포함한 자동차산업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소위 ‘서해안 벨트(소하리 - 평택 - 화성- 아산 - 서산 - 군산 - 전주 - 광주)’의 비정규직 조직화와 관련하여 단사를 뛰어 넘는 노동운동진영의 중■장기적 계획이 요청된다.
모듈화 관련 외주화를 막아내고, 지속적으로 진행될 구조조정에 대해 더욱 면밀히 대응해야 한다.
02년 노동조합 지부의 핵심 투쟁 과제 중의 하나는 광주공장의 장기적인 전망확보와 이를 통한 고용안정이었다. 고용안정위원회 합의에 따라 광주공장에서 30만대까지 증산을 목표로 공장 재편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광주공장 30만대 재편 작업을 위한 대형버스라인 하남특장 이전에 최종합의가 있었다. 이번 합의를 통해 광주공장의 30만대 재편 작업을 위한 1단계 작업이 큰 틀에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버스 하남 이전에 따른 일부 부품 및 작업자 기피공정 등 5가지 부분에 대한 외주화 합의는 현장의 작업조건과 하남특장 이전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을 감안하여 합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자본의 끊임없는 외주화, 비정규직화 시도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 측면이 더욱 크다.
이렇듯 지금까지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이 광주공장의 장기적인 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 중심을 두었다면, 지금부터는 새로운 공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력을 높여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는 부분이 외주-모듈화이다. 현대자본은 신차를 투입하면서 지속적인 외주-모듈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40%까지 외주 모듈화를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외주 모듈화의 목적은 정규직을 축소시키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등 ‘노동의 유연화’를 실현하고 변종변량 생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생산의 유연화’에 있다.
또한 아웃소싱을 통한 비정규직 전용공장의 건설과 무차별적인 해외공장 건설도 궁극적으로는 정규직의 축소와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요소가 되고있다. 현대자본은 아직도 현장 장악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아차■현대차 노동조합을 배제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비정규직으로만 운영되는 S/A(서산경차공장)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경차로만 국한되어 있는 듯 하지만, 다른 차종들을 계속해서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대자본의 체계적인 구조조정을 볼 때 단순히 신차확보와 물량확보의 문제를 뛰어 넘어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면밀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본다. 조합원의 의식에 단순하게 편승하여 ‘신차확보, 물량 확보를 통한 고용안정’에만 집착하는 것은 공장간, 노조 지부간 물량경쟁을 통해 노동조합을 길들이려는 사측의 전략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다각도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에 있어 허점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이제는 ‘고용안정’이 아니라 ‘어떠한 고용이냐’는 문제의식을 조합원들에게 확산시키고 이에 답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환배치와 비정규직 확대를 통한 생산과 노동의 유연화가 고용 자체의 불안정화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진행되는 직무 스트레스와 노동강도 강화는 근골격계 질환 등 심각한 건강권 침해로 다가 선다. 그 과정에서 현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자본의 현장 통제가 강화될 것이며 이는 다시 비정규직 확대와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철폐투쟁, 근골격계 질환 대응을 통한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 등은 구조조정 대응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어떠한 고용이냐”에 대한 접근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 완전한 승리는 전체 노동자가 계급적으로 단결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이야말로 모든 노동자 투쟁의 숭고한 목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개별 사업장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를 통해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것은 부분적인 승리, 제한적인 승리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투쟁 사례를 평가하면서 승리한 투쟁과 패배한 투쟁을 굳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 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소중하지 않은 투쟁이 없고, 하지 말았어야할 투쟁은 없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인간적인 차별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자 해서 벌인 투쟁이기 때문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누가 잘했냐, 누가 못했냐 논공행상하기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투쟁의 결과를 냉철히 분석함으로써, 타산지석으로 삼아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전진을 위해 소중한 자양분으로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01년 말부터 1년여 동안 진행되어온 광주 지부의 비정규직 투쟁은 지금까지의 기아차 내 비정규직 투쟁의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었다고 판단된다. 원칙적인 문제에서부터 전술적인 문제까지, 재확인한 것도 있고, 새롭게 배운 것도 많다.
■ 구조조정의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통일적으로 이해하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조직화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할 경우, 조직화, 요구안, 투쟁에 있어 정규직 노조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스스로 투쟁과 협상의 주체로 서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일차적이다는 것
■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의 계급적 원칙에 입각한 연대투쟁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
■ 그러한 연대투쟁이 실질적인 성과를 쟁취를 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 정규직화 성과가 있는 투쟁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사고를 정규직 조합원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것
■ 이러한 일련의 투쟁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조직화와 정규직화”를 위한 지속적인 준비와 처우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 노동조합 차원의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독자적인 사업계획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
■ 조직과 정치적 차이를 뛰어 넘어 대의원과 현장 제 조직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 등이다.
또한 전술적으로도,
■ 파업 및 임단협 시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문제나
■ 사회적으로 이슈화시키고, 전체 노동운동 차원에서 공동투쟁으로 상승시켜야 할 사안들을 포착하고, 이를 힘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
■ 초기 조직화의 중요성과
■ 협상 중심이 아닌 대중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정규직, 비정규직간 단결을 꽤하고, 승리를 안아 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원칙을 바로 세우고, 자신감 있게 실천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조에 연대를 요구하기 이전에 비정규직과 계급적인 연대를 실현할 것인지, 아니면 외면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전적으로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과 전체 조합원들의 몫이다.
이번 평가가 이후 구조조정 저지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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