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 새벽, 10년 무쟁의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 죽음의 땅 한 켠에 노예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임을 선포하는 불길이 타올랐다. 이 불길은 곧바로 투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박일수 열사의 동료들이었던 인터기업의 노동자들이 곧바로 이틀에 걸쳐 작업거부에 돌입했고 하청노조 동지들이 목숨을 걸고 지프크레인 고공농성을 결행하였다. 그리고 2차, 3차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진용기, 조광한 동지가 조합원임을 공개하고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중식선동을 진행하며 선전을 하고 조합원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 당시 뜻밖에도 몇몇 하청노동자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조합원 가입원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2, 제3의 진용기, 조광한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현장의 작업자들은 분명 술렁거리는 듯 했지만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날마다 쏟아지는 선전물들을 토씨하나까지 꼼꼼하게 읽으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지만 바로 옆의 동료와도 이와 관련된 내용의 대화조차 맘 편히 나누지 못했다. 인터기업 노동자들도 작업거부 이후 사장의 체불임금에 대한 보상과 고용보장 약속을 받고 주춤하고 있었다.
현장의 노동자들과 하청노조를 포함한 대책위보다, 현대중공업 사측과 현대중공업 어용노조의 대응이 훨씬 빠르고 강력했다. 사측과 어용노조는 현중news, 인사저널, 민주항해, 참붓언론, 대의원소식지 등 사내의 선전물과, 해병대 상륙봉사회, 방어진 애향회 등과 같은 현대중공업 내외의 실체도 알 수 없는 별별 사조직들을 총동원하여 열사를 음해하는 악선전을 퍼부어댔다. 여직원들을 동원하여 지역의 가가호호마다 일일이 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6000명이 가입을 했다고 하는 현중사랑 자원봉사단이 발대식을 가졌다. 이는 하청노조에서 또다시 현장투쟁을 감행할 것을 대비해 회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꾸려졌는데 자발적인 모임인 듯 위장하였지만 곳곳에서 강제로 가입을 하게 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게 분노를 터뜨리고 있긴 하지만 이런 것조차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현장에서는 더욱더 폭압적인 현장통제가 이루어졌다. 직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개인 면담 등이 강화됐고 활동가들에게는 좀더 적극적인 관리감독이 이루어졌다. 단 한차례 진행되었던 본관 앞 항의집회를 사전에 입수한 관리자들은 직영 활동가들의 앞을 가로막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오토바이 열쇠를 빼앗는 일도 있었다.
어용노조는 어찌 보면 주장하는 내용이 조금씩 변하는 듯 하지만, 사실 한결같은 목적을 내비치고 있다. 처음엔 대책위를 탈퇴하고 나가더니, 사측이 현중노조를 포함시키는 교섭테이블을 얘기할 때는, 교섭에 참여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문을 하겠다며 몇 번이나 빈소에 와서 난동을 피웠다. 또 대책위에서 현중노조가 교섭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기로 한 이후에는 대책위가 현중노조를 무시하고 어용이라고 매도하고 있다며 또다시 빈소에서 난동을 부리더니 뒤로는 공동교섭단을 꾸리자며 회유책을 제시했다. 사측의 편도 들어주면서 노동조합으로서의 명분도 세우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현중 어용노조는 어용이라는 말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박일수 열사가 분신한 바로 그날 산재문제로 자살한 직영노동자 문제나, 3월9일, 사측의 산재은폐, 폭압적 노무관리를 폭로하기 위해 크레인에 목을 매 자살한 고 류재순 조합원의 죽음 역시 사측과 함께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자기 조합원의 요구에 조차 관심도 없는 노동조합을 과연 노동조합이라고, 민주노조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현대중공업과 현중노조는 끊임없이 용서할 수 없는 행위들을 하며 우리를 도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본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분신대책위는 사측이 제기하는 ‘직영노조를 포함하면 교섭에 응하겠다’는 교섭테이블에 관한 안을 투쟁 초반부터 거론하며 공공연하게 교섭국면을 열어가려 하였다. 몇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대책위는 어용노조의 배신행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으므로 교섭상대로 인정할 수 없으며 교섭에 들어오려면 최소한 그간의 행위를 사죄하고 열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3월8일 대책위 대표자회의는 투쟁에 결합하
고 있으나 대책위 회의체계에는 속하지 못한 지역의 동지들과 대책위의 집행간부, 심지어 투쟁의 주체인 하청노조 동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최소한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조건 없이 현중노조를 받자는 안을 ‘날치기’ 통과해 버렸다. 그 이후로도 현중노조는 겉으로는 이런 저런 시비를 걸어오며 뒤로는 “유족보상문제 정도만 정리하고 처우개선문제는 나중에 해결하자”며 투쟁을 왜곡하여 왔지만 대책위의 교섭의지는 확고하다.
교섭테이블을 받기로 결정한 당시 교섭에만 매달리지 않고 투쟁과 병행할 것이라고 하였지만 지난 13일 전국노동자대회 때 대책위는 ‘질서유지대’를 구성하여 오히려 대오의 앞을 막아서며 평화기조를 주장하였고 이 역시 교섭국면을 열어가기 위한 안간힘에 불과한 것이었다. 대책위의 이헌구 위원장은 “힘이 있는 만큼, 책임질 수 있는 만큼 투쟁에 관하여 말해라”는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교섭국면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측과 직영노조는 마지막까지도 그들의 목적을 위해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한발을 물러주고 열 발을 다시 물러주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나약하고 투쟁의지 없는 일부 지도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은 이미 총선국면으로 접어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의 급류에 휩쓸려 가고 있다. 투쟁하는, 죽음에 내몰려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어딘가로 묻혀 버리고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꾼들의 축제만이 떠들썩할 뿐이다. 여기에 민주노총조차 중심을 잃고 탄핵을 규탄하는 매주 수요일 잔업거부를 결의하고 나섰다.
10년 무쟁의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이다. 이 투쟁은 박일수 열사의 뜻을 이어, 부당하게 착취당하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온 하청노동자들의 삶을 바꿔내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지만 현대중공업 자본 앞에 10년을 노예로 살아오며 어용노조를 용인해 온, 울산의 현대중공업에 다시 민주노조를 세워내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그래서 직영 활동가들의 투쟁 역시 이 투쟁의 중요한 고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숨죽여온 기간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박일수 열사가 지폈던 불꽃이 너무 약했던 것일까. 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해 온 직영활동가들 역시 정작 현장에서의 투쟁을 만들어가는 데에는 주저하고 있다. 투쟁 초반 크레인 고공농성이라는 선도적인 투쟁을 망설임 없이 결행하였으나 그 후 이렇다 할 투쟁계획을 내지 못하고, 대책위가 만들어내고 있는 교섭국면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해온 하청노조 동지들 역시 자기반성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일이다. 그리고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청노조 동지들은 다시 투쟁의 결의를 곧추세우고 있고, 대구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선봉대를 구성하여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용노조를 용인하고 민주노조 운동의 대의를 져버리는, 저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실리조차 없는 교섭 따위는 단호히 거부하고 다시 투쟁을 조직해가자.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고 지원하자. 매번 열사가 생겨날 때마다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이 땅에 더 이상의 열사를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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