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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호 NO.1|12|2001
신호제지의 사내하청 조직화 사례

:: 2001-12-15   조회: 3582


    1. 들어가며



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투쟁을 필두로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수많은 동지들의 피로 얼룩져 있는 과정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할이라는 자본이 쳐 놓은 함정에 빠져 있음을 알기에 더욱 더 비참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깊은 함정에서 아무도 우리를 건져주지는 않을 것이며 고통스럽고 선혈이 낭자하더라도 서로의 손을 맞잡고 조금씩 딛고 일어서는 수밖에는 없다. 그 길에 조금의 힘이나마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2. 신호제지의 특수한 상황



신호제지는 1997년 4월 재계 26위였던 신호그룹의 주력사였다. 그러나 IMF와 동시에 신호그룹이 무너지면서 97년 12월부터 공장의 가동이 중지되고 98년 7월 워크 아웃 자진 신청, 확정으로 기업구조조정에 들어가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98년 11개에 이르던 공장은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5개의 공장이 정리되고 현재는 6개의 공장(진주, 신탄진, 오산, 평택, 대전, 아산)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신호제지의 6개 공장에는 각기 독립적인 노동조합이 설립되어있고(97년에 생긴 신탄진 공장의 경우 진주공장노동조합의 지부형태로 조직) 그 중에서 진주공장노조와 신탄진 지부만이 민주노총 소속이며 나머지 4개의 노동조합의 한국노총 소속이다.


    3. 노동과정과 근무형태의 개괄



팔파 → 조성 → 초지 → 가공 → 완정 → 포장 → 상하차


팔파 공정은 종이의 원료가 되는 펄프를 분쇄기에 넣는 작업을 말한다. 가로, 세로 1미터 가량되는 펄프가 세 개씩 묶여 있는데 이 펄프를 지게차로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시키고 두 개의 펄프를 묶고 있는 줄(벤딩)을 끊어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공정은 한 사람이 지게차를 운전하고 두 사람이 벤딩을 끊으면서 3인 1조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조성, 초지 공정은 분쇄기에서 종이를 갈고 갈아진 펄프를 종이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공정들은 100% 자동화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은 기계감시노동을 수행한다.

가공공정은 만들어진 종이에 코팅 등의 화학처리를 하는 공정이다. 이 공정은 화학약품을 기계에 투입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자동화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은 지게차운전과 기계감시노동을 수행한다.완정 공정은 화학약품 처리된 종이를 규격에 맞게 자르는 공정이다. 이 공정 또한 기계화되어 있으며 잘라진 종이를 적재하는 부분은 지게차로 노동을 수행한다.

포장 공정은 규격에 맞게 잘라진 종이의 불량여부를 판단하는 검수작업과 불량 종이를 가려내는 선별작업, 포장을 하는 작업 그리고 포장할 종이와 포장된 종이를 지게차로 운반하는 작업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하차 공정은 상차공정과 하차 공정으로 나뉘어 지는데 우선 하차 공정은 종이의 원료가 되는 펄프와 화학약품을 대형트럭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내려서 창고에 적재하는 작업을 수행하며 상차공정은 지게차를 이용해서 완성된 제품을 대형트럭에 싣는 작업을 수행한다.

근무형태는 포장공정과 상하차 공정은 상주근무를 하며 나머지 공정은 3교대를 한다. 이 중에서 기계감시노동 중심의 조성, 초지, 완정 공정은 100% 정규직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머지 공정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공정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진주공장은 백상지와 BK지(특수지)를 생산하는 1공장과 아트지를 생산하는 2공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팔파공정의 경우 1공장에서는 정규직 9명과 비정규직 1명이 3교대를 하고 있고 2공장에서는 사내하청 9명이 3교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브로크 팔파(파지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 분쇄기에 넣는 작업)공정은 사내하청 6명이 3교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작업지시 및 근로감독은 조성과의 관리직과 조, 반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포장 공정을 살펴보자. 포장공정의 네 가지 작업중 1) 지게차 운전은 하청, 2) 종이의 불량여부를 판단하는 검수작업은 원청, 3) 불량종이를 가려내는 작업은 하청, 4) 종이를 포장하는 작업은 하청이 담당한다. 이 곳 역시 작업지시 및 근로감독은 완정과의 관리직과 조, 반장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하차는 원청과 하청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작업지시 및 근로감독은 제품과와 자재과의 관리직과 조, 반장에 의해 이루어 진다.


    4. 워크아웃과 6개 소위원회의 활동 그리고 현장장악력의 배가



82년 동신제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신호제지 진주공장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생긴 것은 89년도에 들어서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한국노총 소속이다가 95년 마침내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한다. 많은 민주노조에서 그러했듯이 96년 임단협 시기에 20여일에 걸친 총파업을 성사시켜 내면서 그 동안 억눌렸던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현장에서의 권력을 쟁취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좋았던 시절도 잠시...


"97년 10월부터 임금체불이 시작되어서 98년에는 조업단축이 무려 10개월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행부가 그 때 막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암담했지요... 97년 12월부터 약 10개월 동안을 간부는 철야농성을 진행하면서 회사를 지켰고 조합원들은 10일에 한 번씩 출근해서 공장 청소와 기계의 동파방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을 배치해서 진행했습니다."(신호제지 사무국장)



97년 12월 18일 진주공장 1공장 가동 중지, 30일 2공장 가동 중지가 되면서부터 1공장이 부분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2월까지의 3개월은 온갖 소문이 나도는 회사의 경영상태에 대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앞으로 노동조합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과 일상활동을 통해서 조직력이 이완되는 것을 막아내었다. 교육은 주로 회사의 경영상태와 이후의 대응에 관해 노조간부와 외부강사를 통해 진행되었고 일상활동은 공장 청소, 기계 정비, 폭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합원의 고향집을 방문해 비닐하우스를 수리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졌다.


"98년 2월부터 6개 소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소위원회 위원장은 상집에서 맡고 대의원과 조합원을 구성원으로 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고용안정 소위원회, 경영분석 소위원회, 도급/하도급 소위원회, 불법 소위원회, 조사통계 소위원회, 고용파기 실태조사 소위원회 이렇게 6개죠... 처음에는 표 하나를 해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차츰 하면서 나아졌죠..." (신호제지 사무국장)


6개 소위원회의 활동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 고용안정과 노조의 실질적 경영참여였는데 6개 소위원회의 활동 중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한 것은 고용파기실태조사 소위원회와 고용안정 소위원회였다. 이 두 소위의 활동을 통해서 98년의 인원을 기준으로 부서별로 T/O를 확정(각 부서별로 T/O를 확정하고 결원이 생겼을 시 조기에 충원해야 한다는 조항을 단협에 명시)해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소위원회의 활동을 통해서 알아낸(회사도 모르고 있었음) 고용보험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논리적 기반으로 98년의 조업단축 기간동안 평균임금의 70%선을 회사에 요구, 쟁취하여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결정적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고용파기 실태조사 소위의 활동이 눈부십니다. 93년부터 98년까지의 직원 수의 변화 그리고 임금 변화의 추이 등을 다 조사했습니다. 그 동안 매년 10%대의 임금인상을 해 왔지만 회사에서 임금인상을 해 준게 아니라 그 동안 줄어든 사람만큼(166명)의 노동을 우리가 더 한 것이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뿐입니다. 교섭에 이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습니다. 그러한 점이 먹혀서 T/O확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신호제지 위원장)

"98년에는 10개월 정도나 조업단축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일한 사람이 돈을 더 적게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신호제지 사무장)

"회사가 워크아웃인데 정리해고도 없었고 임금도 어느 정도 나왔습니다. 그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완정공정 조합원)


그리고 작년부터는 신입사원채용을 고용안정위원회(노,사 각 4명으로 구성, 합의제)에서 하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은 공채를 원칙으로 하며 심사기준은 서류전형 50점, 전문기능 10점, 면접심사 40점이다. 이 중에서 결국은 면접이 당락을 결정하는 기준인데 이 면접심사의 기준항목 4가지 중에서 하나가 노조관이다. 더불어 이사회 회의록 회람, 경영분석회의, 회계연도 시설투자회의 참관 등으로 경영에 대한 초기형태의 감시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인 진주공장과 신탄진 공장의 전략적 위치와도 관련된다. 작년을 기준으로 진주와 신탄진 공장의 매출을 합하면 인쇄용지 매출액의 73%, 그리고 전체 매출액의 58%를 차지하는 주력 공장이다. 그리고 신호제지의 구조조정의 방향은 현재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산업용지 부분을 정리하고 인쇄용지를 살리는 방향성으로 그 가닥을 잡았는데 이러한 상황들이 작용했었다. 신호제지 노동조합은 98-99년의 경험을 통해서 워크아웃->노조와해라는 상식적 구도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노조의 현장장악력을 배가할 수 있게 되었다.


    5. 조업재개와 도급화 저지



98년 말 금융지원이 확정되고 조업이 다시 재개되면서 98년 12월 1공장 1호기 폐쇄(17명), 99년 1월 20일 87명 용역통보, 2월 기관실 12명 인원조정 통보 등 회사의 본격적인 고용조정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조합원의 결의를 통해 총파업을 선언하고 고용파기 실태 조사를 통해 회사를 설득했다. 93년 대비 98년 인원으로 볼 때 5년간 총 166명의 감원이 있었으며 더 이상 인원이 줄어들어서는 정상적인 조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했고 사측은 결국 도급화 정책을 철회하고 폐쇄인원을 고용유지하게 되었다.


"2000년에도 도급화 하려는 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도급은 절대 안 된다. T/O를 확정했기 때문에 쉽게 철회시킬 수 있었습니다."(신호제지 사무국장)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내하청이 94,5년에 한 150명 있었다가 98년 회사가 안돌아가니까 사내하청도 없어졌죠. ... 99년 1월부터 다시 사내하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많은 공정에서 도급화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하면서 그리고 다른 회사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실제로 도급화가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신호제지 위원장)



    6. 도급/하도급 소위원회의 활동과 제지산업노동조합의 건설




"도급이 힘이 강해지면 정규직의 힘 또한 강해진다. 또한 정규직이 힘이 강하면 비정규직도 힘이 강해져야 하는 거지요... 다 같은 노동자인데 하는 생각들이 자신이 도급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신호노조 부위원장,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추진 위원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는 목적은 두 가지였다. 99년부터의 도급/하도급 소위원회의 문서에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구처럼 하청노동자들의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는 것과 정규직의 도급 전환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신호제지 노동조합에서는 지난 3년간의 도급/하도급 소위의 활동을 바탕으로 2000년 4월 당시 조직부장이던 정용호 현 부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추진위는 사측에게 도급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조직해 나갔다. 하청 노동자 90여명이 참석했고 그 자리에서 하청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털어놓았고 추진위는 그 모든 것은 노동자들이 단결할 때 해결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 후에 사측과 진행중이던 도급제도 개선을 위한 워크샾의 내용과 진척상황을 하청노동자들에게 보고하는 간담회를 계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이후 노동조합 건설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주체를 도급 3사에서 10명을 노조추진위로 선발해 진주지역의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하면서 근기법, 노조법 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학습을 진행해 나갔다.


"5월 경부터 한 5개월간은 거의 매일 밤 모였습니다. 교육도 받고 토론도 하고 하면서 두려움도 많았지만 재미도 있더라구요... 뭔가 해 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제지산업 노조 위원장 김종표)


이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이 존재했다. 97년 하청노동조합 건설 실패의 경험과 자본의 회유, 협박, 계약해지의 두려움 등이 존재했다. 97년 세 개의 도급사 중에서 하나의 도급사에서 노동조합 건설 시도가 있었고 신고필증도 교부받았지만 도급사가 폐업을 하고 하청노조위원장이 거액의 돈을 받고서 퇴사한 일이 있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인가?라는 두려움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핵심주체에 대한 회유와 협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한테는 회유를 하더군요. 도급사 사장이 추진위원을 그만두면 그만한 대우는 꼭 해주겠다고 그러더군요." (제지산업 부위원장)


도급 3사 사장들은 회유로 그리고 신호제지 자본에서는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신호자본에서는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진주 공장장, 총무과장, 도급담당을 해고하겠다고 나왔다.


"사측에서 그러더라구요(계약해지와 해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같이 죽자고... 비정규직 조직화는 대의원회의의 결의사항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습니다."(신호제지 위원장)


신호제지 노동조합에서 이러한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근거가 있었다. 첫째, 조합원들과 지도부의 상호 신뢰이다. 98-99년을 거치면서 워크아웃하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정리해고와 강제적 인원조정을 막아냈고 이 과정에서 생긴 상호신뢰가 현 집행부를 연임하게 만들었고 그 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둘째, 단협안에 명시된 고용안정위원회의 운영규정이다.

고용안정위원회는 조합 4명, 회사 4명으로 구성합의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 이 조항은 올해 제지되어 있으며 이에 해당하는 모든 사항은 협의 후 산업 노동조합의 올 임단협 때 위력을 발휘했는데 임단협 과정에서 도급 3사중에서 한 도급사가 폐업을 했고 12월 1일 부로 새로운 사장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과거 인원의 전원 고용승계와 임단협 인정에 도장을 찍어야만 했다. 이러한 근거들을 가지고서 추진위는 불안해하는 하청노동자들을 설득했다.


"계약해지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만약에 노동조합을 탄압한다면 우리가 사장을 잘라버리겠다. 원청으로부터의 계약해지는 우리가 막는다. 하청이 강해야만 우리도 살 수 있다. 같이 살자' 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얘기는 하청노동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원청조합원들에게도 계속적으로 해 나갔습니다."(신호제지 사무국장)

"신호에서 약속을 많이 했습니다. 회사에서 탄압하면 신호에서 같이 싸우겠다고요..." (제지산업 부위원장)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2000년 11월 1일 설립신고 11월 4일 설립 총회를 거쳐서 현재의 제지산업노동조합이 탄생했다. 신호제지 노동조합에서는 조합결성과 맞추어 신호자본과 도급사들과의 협상을 통해 일급 2150원, 상여금 200% 인상(250%->450%)의 처우개선(월 20만원 정도의 임금인상)을 일구어 내었다.


    7. 신생노조의 첫 걸음 : 2001년 임단협


제지산업 노동조합은 2001년 임단협을 7월 16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공식적인 단체협상을 지금까지 21차례 진행했으며 현재 임금성부분[일급 1600원, 조합원 수당 1만원 지급, 기존 시행규칙 부분에서 부모상 부분 5일에 20만원(10만원 인상), 자녀 결혼 2일에 20만원(10만원 인상)]은 합의를 본 상태이며 단협상의 핵심조항인 업체변경시 연월차 승계 등에 관한 조항이 경합중이어서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지만 현재까지 100여 항에 달하는 단협안에 합의를 했다.

이번 임단협 과정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살펴보자.

첫째, 하청노동조합의 힘으로 임단협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제지산업 노동조합은 사실상 신호제지 노동조합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한 단위이다. 노조추진위원들부터 일반조합원에 이르기까지 노동조합운동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76명의 조합원 중에서 주축을 이루는 연령대가 40-50대이다. 그러다보니 자칫 노조의 자활력이 떨어지고 수동적이기 쉬운 조건에 있다. 올 초 까지만 해도 이러한 염려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지산업노조의 단협이 한창이던 10말에 만난 신호노조 부위원장의 이야기이다.


"그게 걱정입니다. 자꾸만 신호노조에 기대게 될까봐서요... 그래서 단협안을 만드는 것까지 제가 결합해서 같이 진행하고 지금은 거의 개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지산업노조가 신호제지라는 회사에 하청으로 들어와 있는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해서 노조까지 원청노조의 하청으로 만들어서는 안되는 거지요... 제지산업노조를 새로 생긴 민주노총 사업장이라고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물론 신호노조의 역할은 반드시 존재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업은 지역본부, 연맹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가지고서 이루어져야하고 필요한 부분이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제지산업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민주노총 진주시 협의회 차원의 단위노조입니다. 그 동안 제지산업 동지들이 아직까지 미숙한 점은 많지만 지역의 타 노조와의 연대투쟁도 계속 진행해왔고 신생노조치고는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습니다. 시협차원에서 연대, 엄호해 나갈 것입니다." (진주시협 의장)


하지만 이번 임단투의 기간 동안 간부농성, 간부파업(간부파업 후 도급사들은 손을 들었다.)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투쟁을 조직하고 성과를 남겼다.


"간부 철농을 할 때 비로소 조합원들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없는 돈을 쪼게 손에 봉투를 든 조합원들이 철농장을 찾을 때 참 뿌듯하더라구요. 가장 걱정했던 임금성 부분을 합의하고 나서 조합원들이 참 좋아합니다. 저도 뿌듯하기도 하고 좋네요... 요즘은 간부들이 다들 신이 났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지산업 위원장)


올해 이뤄낸 일급 1600원 인상은 작년의 2150원에 비길 바가 아니다. 함께 땀을 흘려 노동을 하고 그 성과를 거둬 본 사람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이라 생각된다.

둘째, 정규직노조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원, 하청간의 연대투쟁은 자연발생적으로 어느 날 문득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 노동과정내에 자본이 심어놓은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분할의식을 넘어서는 것은 목적의식적인 활동없이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분할구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으려했던 신호제지 노조의 노력을 선별, 포장 공정을 통해서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우리 식구, 너희 식구 이런 분위기입니다. 야유회를 가더라도 같이 가지 말자. 태영(하청기업) 사람들하고 같이 가면 꼭 말도 많고 그렇더라... 이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검수공정 정규직 조합원)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구도이다. 이러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할의식은 우선 받고 있는 임금에 의해서 강요되어지며 나아가서 노동과정내에서 관리자들에 의해서 강화되어진다.


"제가 처음들어가서 들었던 얘기가(관리직 차장에게)... 태영아주머니들하고 가까이 지내지 마라. 월급이 얼마인지 얘기하지 마라. 태영사람들은 뜨내기다. 우리가 주인이니까 우리끼리 잘하면 된다. 힘든 일 있으면 태영사람들이 말 안 듣거나 하면 나한테 얘기해라. 내가 해결해 준다." (검수공정 정규직 조합원)


관리자에 의해서 행해지는 분할의식의 강화과정을 실제로 있었던 일을 통해서 알아보자. 검수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종이의 불량여부를 보아서 이를 선별공정으로 넘길지 아니면 바로 포장공정으로 넘길지에 대해서 판단하는 일과 포장된 종이에 부착할 상표를 챙겨서 포장을 하는 하청노동자에게 가져다 주는 업무를 담당한다. 여기에서 종종 상표를 잘못 붙이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는 명백히 검수 노동자의 실수이다.

이 때 관리자가 등장한다. 관리자는 검수 노동자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조용히 이야기한다. '다음부터 실수하지 마라.', '회사가 어려운데 잘 하자.' 등의 좋은(?) 이야기로 타이르면서 하청노동자에게로 화살을 돌린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안심시키면서 밖으로 나와서 포장을 하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그 많은 상표를 붙이면서 잘못된 지를 못봤냐? 니들하고 일을 하느니, 개를 데리고 일 하는게 낫겠다. 개도 일 그만큼 하면 눈치로라도 틀린 상표인줄 알겠다. 아이구 정말...' 과거에는 욕설을 퍼붇거나(야 이 개같은 년들아, 콱 밟아 죽여버릴까보다 등등) 주위에 잡히는 물건들(전화기, 책, 공구 등등)을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바탕하는 동안 하청노동자들은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쥐죽은듯이 있을 수 밖에는 없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정말 성질나죠... 우리가 잘못한 거도 아닌데... 월급날보다 더 성질나는 날이죠..." (포장공정 비정규직 조합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원청)하고 걔들(하청)하고 똑같나? 다르지. 제가 비정규직 철폐해야되지 않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원래 다른데 어쩔 수 있겠나?라는 얘기들을 하지요." (검수공정 조합원)


이러한 과정은 결국 자본의 분할지배구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우월의식으로 귀결된다. 그나마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자본이 부여하는 방식으로 즉 인적자본의 차이라는 형태로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원청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적 의식으로 귀결된다.


"니하고도 얘기 안할란다. 지금은 괜찮지만 니도 똑같아질거다. 요즘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듣습니다."(검수공정 정규직 조합원)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정규직 노조에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간담회도 조직하고 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았다. 이 공정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아주머니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조합활동에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목적의식적으로 활동가를 배치하게 된다.

검수 공정에 결원이 생겨서 올 초 신입사원 채용을 하게 되었다. 그 때 노조에서는 이 공정에 사내 복지매장(노조에서 운영)에서 일하던 여성조합원(진주지역에서 10여년간 활동한 활동가)을 채용해서 이 공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기초를 마련하고자했다. 물론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빨갱이를 들여놓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신입사원 채용을 하는 고용안정위원회에서 결정났다. 노조에서는 이력서 작성에서부터 면접연습까지 10일 이상의 준비를 통해 결국 노조에서 미는 사람이 채용되었다. 이 사람이 현재 이 공정에서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교두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위기의식이 존재했다.


"많은 업체들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을 보면서, 어느 날 문득 어느 라인 전체에 대기 발령이 떨어지고 정리해고와 도급화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일이 우리에게 있지 말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지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바로 정규직의 코 앞에 닥친 우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위기감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신호제지 위원장)


이러한 위기의식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확대간부회의에서 공유되어진 사항이다. 그리고 확대간부들을 통해서 일반조합원에게 공유시켜나갔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감하는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신호제지의 조합원이 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지금의 제지노조의 부위원장님이 하청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 연설을 한 것이 그것이다. 50대 후반인 부위원장님이 '우리 딸이 귤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귤 한 줄을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을 아느냐?', '우리집에 와서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어봐라. 텅 비어있다.' 라고 외친 것이 신호제지 조합원들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다. 이번 제지산업 노조의 임단협 과정에서 정규직 동지들이 보여준 격려와 성원은 이러한 사전 작업에 기인한다.

그리고 사내하청 동지들에게서 신호노조의 위원장님에 대한 신뢰는 가히 절대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라는 방침이 정해지면서 신호노조 위원장을 중심으로 추진위 동지들이 하청노동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하청노동자들의 문제를 정말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하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노력들이야말로 자본의 분할지배를 그 뿌리부터 흔들어 깨뜨리는 것이요, 진정한 연대를 위한 기초이다.

이번 임단협은 신호제지의 앞에서 살펴본 단협 73조 6항, 8항, 신호제지 노조의 연대투쟁 의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것이 없었다면 노조설립 -> 하청업체와의 계약해지 -> 하청기업의 폐업 -> 해고 -> 부당해고 투쟁이라는 악순환을 답습했을지도 모른다. 계약해지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원청노조의 역할이 있다. 계약해지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원, 하청 연대투쟁 밖에 없다. 모든 하청업체를 조직한다고 하더라도 계약해지를 감행하는 것이 자본임을 우리는 익히 보지 않았던가?


"신탄진공장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아주 높습니다. 98년에 새로 생긴 공장이라 비정규직 비율을 아주 작정하고 늘인 겁니다. 46%정도 됩니다. 자본과의 줄다리기에서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탄진 공장은 진주공장 수준으로 정규직화 하자는 요구를 하고 진주공장에서는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어서 점진적으로 처우개선을 해나가면서 정규직화 요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전면적인 정규직화 요구는 그것이 파견싸움으로 가던 현재 진행중인 형태인 '업무의 흐름을 원활하고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로 자본을 설득하는 방향(신탄진 지부에서 작년 16명, 올해 10명 정규직 전환성사)이건 간에 그 시점을 워크아웃 졸업 시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신호제지 위원장)


현재 신호제지는 워크아웃 상태의 기업이다.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위해 채권단과 맺은 M.O.U 약정서에는 각 해마다의 사용가능한 직원 수와 임금 총액이 명시되어 있다. 정규직화 요구에 신호자본이 항복하더라도 채권단과의 싸움이 다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전면적인 정규직화 투쟁의 시기를 워크아웃 졸업시점으로 잡고 있다.

이러한 맥락과 맞물려서 현재 진주에서는 제지산업 노동조합의 앞으로의 전망을 놓고서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현재 두 가지 정도의 방향이 논의되고 있는데 첫째, 신호제지 노동조합과 제지산업 노동조합의 조직 통합이다. 둘째, 제지산업 노동조합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신호제지 소속 다른 공장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향 모두 지금 각 공장별로 나누어져 있는 노동조합을 통합해 '신호제지 노동조합'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현재 6개 공장의 노조가 모여 '신호제지 노동조합 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상급단체 선정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과 산별노조로의 전환과정과 맞물려 있다.


철폐연대 : 신호제지에도 신경영기법들이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사무국장 : 없습니다
철폐연대 : 분명히 내려오기 전에 확인한 신호제지 회사 홈페이지에서 Action 21운동이 한창이던데요...
사무국장 : 지들끼리 하죠...
철폐연대 : 무슨 말씀이신지...
사무국장 : 작년부터 공장에 Action 21본부가 생기고 조합원 교육을 하더군요... 신경영기법이 도입된 회사들을 방문해보고 나서 확대간부회의를 했습니다. 신경영기법은 결국 노조와해로 귀결된다. 하지 말자. 그래서 안하기로 했습니다. 5s부터 거부해서 안하고 있습니다. 조합에서 하지 말자 그러면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관리직들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그게 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조합에서 하자 그러면 하는 거고 하지 말자 그러면 안 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던 사무국장님의 표정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리고 어제 밤 꿈에서 나타난 것처럼 신호제지 공장에서 비정규직 철폐라는 깃발이 나부끼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강승한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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