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14일, 박일수 열사 1주기입니다. 현장에서 직영활동가 동지들과 하청 조합원들이 열사가 분신한 그 자리에서 현장추모제를 진행하려 했습니다. 사측 경비대들과 구사대들은 현 동지들을 분신 자리로 가는 것을 폭력적으로 막았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저항하면 짓밟아버려라” 경비대장의 지시, 경비대들의 살기가 느껴졌습니다. 묵념이라도 하기 위해 한 동지가 발언을 하려 하자, 경비대들과 구사대들은 동지들을 해산시켜버렸습니다.
병영과 같은 통제, 인간적인 숨구멍조차 막아버리는 폭력. 정말 죽을 것 같은 노동강도,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박일수 열사 합의서. 여전히 조합원임을 공개하지 못하고 숨죽이는 하청노동자들. 공장 밖으로 쫒겨나고 블랙리스트에 걸려 취업길까지 막혀 고통당하는 하청조합원들. 여전히 조합원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전국금속노조 현중 사내하청지회. 박일수 열사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죽어라고 투쟁한 결과가 이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 심장에 통증을 느끼게 하고 가슴 속에 들어 찬 울음보를 터지게 했습니다.
참담한 심정을 가지고 솥발산 박일수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박일수 열사 묘소 앞에 모인 지역과 전국의 동지들, 모두 무겁고 어두운 표정이었습니다. 박일수 열사는 우리에게 하루하루 투쟁의 동력이자 쉼터이자 새로운 사상으로 일어서는 원전과 같은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과연 열사 정신은 살아 있는가? 우리에게 말로 외치는 열사정신은 우리의 무기력을 변명하는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참배를 진행하는 시간 내내 고통스러웠습니다.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려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키려는 자본의 유연화 공세 앞에 과연 박일수 열사는, 우리의 열사 정신은 무엇인가? “자본으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정치 조직적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장으로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본의 공격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박일수 열사 앞에 절을 하면서 박일수 열사의 호된 비판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히려 투쟁동력이 없다는 이유로 상설적인 노사합의기구에 들어가려고 하는 민주노총 지도부,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을 참담하게 확인하는 현실, 비타협적인 투쟁보다는 협상을 통한 마무리와 수습을 먼저 고민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공고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무기력함. 박일수 열사 앞에 우리 모두는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죄인들이지만 죽어도 열사를 꿈꾸지 않습니다. 박일수 열사처럼 죽어라고 현장을 조직하고 현장으로부터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지금 현중사내하청지회가 현장으로부터 고립되고 조합원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차 열사 정신을 현장에 나르고, 조합원들의 절박한 요구로 투쟁의 초점을 다시 세울 것입니다. 현장을 재조직화 하기 위한 긴 시간들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한 삶과 열사의 절규를 이어 받는 우리 행동이, 우리의 실천이 비록 어설프고 초라할지라도 이 어설프고 초라한 모습에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게, 더 이상 무능력해서 때를 놓치지 않게...
- 박일수 열사 1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낭독된 조성웅 지회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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