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아자동차 평가는 2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우선 이번 호에서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조의 건설부터 투쟁까지의 과정을 싣고, 이후 투쟁의 평가와 정규직과의 연대투쟁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2002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에 모범적인 활동을 펼친 기아자동차시내하청노조의 투쟁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찰 속에 2003년 역시 공동투쟁의 근거와 가능성을 만들어 봅시다.
1. 기아하청노조 건설과 투쟁
1) 광주공장 하청 노동자들의 실태
01년 하반기, 광주공장에는 18개 업체가 920여명의 노동자를 직접라인에 공급(불법파견)하고 있었다. 이들 하청노동자들은 2001년 기준으로 평균 기본급 56만원(시급 2,366원), 상여금 400%의 임금수준으로 잔업, 특근을 포함하여 월평균 75만원을 넘어가지 못하는 저임금에 시달렸다. 이는 연봉을 기준으로 정규직 대비 약 3배가 차이나는 액수였다. 또한 평균 근속기간도 1년이 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2) 비정규직 정리해고 발표와 하청노조의 출범( ∼01. 12. 1)
2000년 들어서 하청노동자가 급속히 늘기 시작하자 같은 해 하반기부터 지역의 학생운동, 노동운동 출신의 활동가들이 하청으로 투신하여 조직화를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01년에 들어서면서 사측은 캐리어하청 투쟁으로 2년 이상 근무한 100여명의 하청노동자가 정규직화되고, 불법파견업체 사업주와 캐리어 관리이사가 구속되자, 하청에 대한 주도면밀한 대응을 준비해 나간다. 3월 '비정규직노조 설립 관련 관리방안'이라는 사찰문건을 작성하여 정규직 현장활동가들을 사찰하고, 하청업체별로 포스트맨(프락치)를 조직적으로 배치하는가 하면, 블랙리스트를 이용해 하청에서 활동하던 유00 동지(5월)를 사직시키고, 명등룡 동지(8월, 이후 부당해고 투쟁을 전개하다가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게 됨)를 해고하였다. 또한 하청노조 건설시 지부와 하청노조, 조합원들을 분리하기 위한 계획을 착실히 수행해 나간다.
하청활동가들은 01년 9월까지는 월 1회 정도 모이다가 10월 20일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을 접하고 10여명이 노조설립을 결의하였다. 11월 18일 정리해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입수하면서 노조 건설추진위를 구성하여 20여명이 노조 건설에 대한 구체적 일정과 방침에 대해 확정하였다.
11월 24일 사측은 7개 업체(성진, 서광, 아산, 용성, 주성, 홍원, 기룡) 401명(본공장 300여명, 소형차 150여명)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11월 30일에는 각 업체 개별근로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다.
노동조합 광주지부는 10월 15일, 민주노총광주전남지역본부 조직차장(비정규직 담당)과의 면담을 통해 기아하청에서 조직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 후 광주공장 상황과 비정규직에 대한 대응방안과 관련하여 간담회와 내부토론을 진행하지만, 조직화 등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는 충분히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12월 1일(토), 광주지부와 상급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민주노총 광주전남 지역본부 사무실에서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조합 설립식을 진행하였다. 사측은 인력관리팀과 용역회사 관리자들을 동원하여 "노조가입시 퇴직금, 상여금도 안주고 평생 꼬리표가 따라붙어서 취직을 못한다"는 등 하청노동자들에게 노조에 가입하지 말 것을 종용하였으며, 민주노총 근처에 30여명의 하청관리자들을 배치하여 활동을 감시했다.
3) 투쟁 1시기 : 초기 조직화 실패와 임시대의원대회의 연대 거부(01. 12. 1 ∼ 12. 31)
12월 3일부터 하청노조는 출근투쟁을 진행하였고, 정규직 조합원과 대의원들과 함께 항의와 몸싸움을 전개하며 현장진입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사측은 중식시간 등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등 감시와 탄압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하청노조는 지부 사무실을 하청노조 사무실로 쓸 것과 조직화를 위해 정규직 노조가 연대해 줄 것 등 4대 요구를 지부에 요구해 왔지만, 12월 7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모두 부결되고, 지부장의 "노조 대 노조 연대"한다는 방침이 천명된다.
이에 따라, 12월 12일 민주노총지역본부, 금속연맹광전본부, 노조 광주지부, 하청노조가 노동청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5000여 정규직과 1천여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광주공장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계획이 없는 사측에게 있으며, 사상 최대의 흑자를 실업자로 되돌려준 기아자동차에 대한 규탄과 함께 ▷ 사내하청 노동자 정리해고 방침 철회 ▷ 장기적 경영 계획과 고용안정대책 수립 ▷사내하청 노조에 대한 탄압 중단 등을 촉구하였다.
12월 14일 하청노조는 기아자동차와 하청 18개 업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12월 17일 단체교섭 거부의사를 우편으로 접수했다.
하청노조는 한달 간의 투쟁과 조직화 사업을 진행했지만, 초기조직화를 실패하고 만다. 사측은 끊임없이 '블랙리스트 협박'과 '재계약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노조가입을 막는 조직적인 공작을 진행하였고, 정규직 조합원들의 고용불안 심리를 이용해 "지부가 하청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는 등의 악선동을 현장에 유포시킴으로써 지부를 고립시켜갔다. 하청노조의 미약한 조직력과 현장 분위기 악화로 인한 지부와 대의원, 현장 제조직들이 위축되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현장에서 원·하청 노동자간의 연대는 물론이거니와 초기 노조 조직화사업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곧바로 12월 31일 사측의 401명의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다. 사측은 정리해고 전에 재취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신규채용시 인세티브를 부여한다는 말을 했으나, 이는 근거없는 말 뿐이었으며, 하청노동자들을 안심시키고 조직화를 방해하기 위한 연막에 불과했다.
사실 12월 31일자 1차 대규모 정리해고는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한 것이었는데, 01년 광주공장의 경영실적은 300억 흑자로 65년 아시아차 창사이래 최대 규모였으며, 02년 생산계획도 01년도 18만대 대비 9%가 증가된 20만 1천대로 늘려 잡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아자동차 전체적으로도 01년 경영실적이 5천억원의 최대 흑자를 기록하였고, 02년도 생산계획은 01년도보다 7.2%가 증가된 64만 2천대로 늘려 잡은 상태였다. 이는 광주공장의 주요 시장인 중남미시장에서의 부분적 수출저하에도 불구하고, 북미시장에서의 수출실적이 47%가 증가될 정도로 지속적으로 급신장(미국내 수출 5위)을 이루었고 서유럽과 중동, 호주 등 전세계적으로도 꾸준히 수출호조를 보인데 기인했다. 사측은 계약해지 사유로 '생산물량 감소로 인한 비용절감 차원'이라고 했지만, 사후적으로 드러났듯이 ▷ 캐리어 하청 2년 이상자 정규직화 이후 기아차에서도 2년 이상자들이 대거 발생할 것을 고려한 사전 조치였으며 ▷ 하청노조 건설을 사전에 봉쇄하고 ▷ 하청 정리 이후 타우너 단종과 주조공장 폐쇄 방침에 따른 구조조정 수순을 밟기 위한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청노조의 초기조직화가 실패함으로써 대중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한데다가 노조 지부 또한 구조조정에 대한 면밀한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장으로부터 고립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하청노조 간부의 실무력 부족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4) 투쟁 2시기 : 정규직 노조의 연대 투쟁과 4. 12 정규직화·직접고용 합의(02. 1월 ∼ 4월)
하청에 대한 1차 대규모 정리해고가 '생산물량 감소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가 아니라, 하청노조 저지용, 구조조정 수순용이었다는 것은 새해에 들어 여실히 드러났다. 02년 1월 3일 사측은 비정규직 신규투입을 시도하는 데,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고, 이어 남아 있는 하청노동자 112명의 전환배치와, 해고자 중 33명 리콜을 노사합의 하였으나 1월 7일 비정규직 신규인력 투입이 확인되었다.
이에 1월 9일 사내하청노조는 소형차 중심의 근거지 마련을 위해 '기만적인 정리해고 규탄 및 고용보장을 위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고, 금속산업연맹 광전본부와 함께 정리해고 규탄 및 고용보장 촉구집회를 갖는 등 지역연대투쟁을 강화해 나간다.
사측은 1차 401명 해고가 너무 과도하여 오히려 인원이 부족하게 되자, 해고자 25명, 신규채용 25명, 총 50명을 2월 18일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지부와 합의하였다. 이에 하청노조는 회사측 스스로가 1차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인정한 것이라며, 정규직으로든 비정규직으로든 401명 전원 리콜을 조건없이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25명 정규직 채용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할 것을 주장했으나, 사측은 기준을 세우지 않고, 하청노조 가입 저지 등 탄압책의 일환으로 정규직 채용을 이용하였다.
한편, 12월 7일 임시대의원 대회에서 하청노조 연대의 건이 부결된 이후 현장에서의 연대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지부는 1월 중순 고용안정특위와는 별도로 비정규직실을 건설하여, 예산을 편성하고, 비정규직 담당자를 중심으로 현장 제조직 소속의 대의원들과 함께 비정규직 특위 구성을 통해 현장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2월 들어서면서 하청노조는 지부에 공동투쟁체 구성을 통한 철야농성 및 공동출투 진행을 요구하였으나 공동투체 건설은 진행하지 못했으며, 비정규직 특위와 현장 제조직 중심으로 공동출투가 이루어 졌다. 1월 31일부터는 "기아자본의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방관하는 노동청을 규탄"하기 위해 하청노조의 노동청 앞 1인 시위에 돌입하였고, 3월 중순부터는 점심시간에 본공장 정문에서 중식투쟁을 전개한다.
그간 원·하청 노조간의 연대투쟁을 바탕으로 4월 12일 노조지부는 사측으로부터 ▷ 근무중인 하청노동자와 12.31 정리해고자 중 130여명 정규직화 ▷ 잔여인원 중 300명을 계약직으로 직접고용 (03.4.30까지 1년 계약, 만료 후 희망자에 대해서 1년 연장) ▷ 04. 5. 신차투입 시점에 정규직 신규채용 필요시 계약직 중 우선채용 ▷ 나머지 하청노동자는 계속 근무를 골자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526명에 대한 2차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일부 정규직화라는 소중한 성과를 쟁취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소요인원 신규채용건과 관련하여 ▷ 트럭 및 버스도장라인에 6개월 계약직 신규충원 ▷ 버스 및 주조라인에 3개월 용역 및 실습생 투입을 합의해 줌으로써, 앞의 성과를 훼손하는 제한적인 성과이기는 했다. 4. 12 합의안에 대해 하청노조는 526명 하청노동자 중 130명 정규직화, 300명 계약직화를 환영하고, 남은 100여명의 고용승계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 신규 투입된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을 지적하였다.
하청노조의 지적이 일부 틀린 것은 아니나, 4·12 합의안은 사전에 지부와 하청노조간의 조율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합의안 결과에 대해 함께 책임지고, 부족한 부분은 함께 풀겠다는 식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 논평하는 형태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지부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하청노조가 초기 조직화 실패로 인해 노조지부의 협상력에 갈수록 의존하게 됨으로써 지부-사측 간의 협상결과를 관조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지부의 생각이었다.
5) 투쟁 3시기 : 임단협 시기 비정규직 단협 조항 쟁취 투쟁 (02. 5 ∼ 7. 23)
3월 노동조합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기아차 내 비정규직 문제를 완전 해결하기 위해 32조 신설조항을 마련하였다. 이후 하청노조는 02임단투에서 단협 32조를 쟁취하는 것에 투쟁의 방점을 찍고, 5월 29일 소하리 공장, 5월 30일 화성공장 순회 선전전을 기아차 노조 간부 및 현장활동가들과 함께 진행한다.
5월 27일 광주지방 노동청에서 열린 캐리어하청, 삼화산업, 기아하청 등 지역 장기투쟁사업장들과 노동청장과의 4번째 간담회에서 기아차광주공장의 불법파견과 관련하여 4월 30일까지의 위법행위에 대해 노동청에서 직접 기아 사측을 고발하기로 하였다. 6월 3일 노동청이 불법파견에 대한 고발을 진행하자 사측은 1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간접부서로 배치하였다.
사내하청은 6월 17일부터 본공장 정문에서 현대판 노예을 상징하는 칼과 쇠사슬을 목에 차고 하는 퍼포먼스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02임단투 시기에 맞추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매주 수요일 저녁 북문 앞에서 약식집회를 갖는 등 총력투쟁에 돌입한다. 6월 26일에는 금속연맹 집회를 계기로 하청노조 위원장 고재한 동지와 교육부장 명등룡 동지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7월 15일 단식 20일차에 명등룡 동지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것에 이어, 7월 22일 단식 27일차에 고재한 위원장도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7월 19일 "가톨릭병원 정상화와 기아사내하청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를 통해 기아차 광주공장 인력관리팀에서 작성한 [비정규직 노조 설립 관련 관리방안]이라는 불법 사찰문건을 폭로하고 사측의 하청노조 건설 저지를 위한 사찰과 탄압에 대해 규탄하는데, 사찰문건 발표 시기와 관련하여 노조 지부와 갈등을 빚게 되기도 한다.
02 임단협 최종안이 조합원 총투표만을 남겨둔 마무리 시기에 최종안과 관련하여 하청노조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통해 논평한다.
첫째, 타결된 단협 32조에 대해서 하청노조는 애초 노조 측 제시안의 근본취지인 "비정규직 신규채용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통한 "비정규직 철폐"의 기조에서 상당히 비켜난 것으로 보고 "비정규직의 추가투입 허용"을 전제로 하고 "이에 대한 제한" 내용을 담고자 하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②항의 "채용할 경우"를 전제로 "의견 일치케"라는 표현은 비정규직 투입 허용을 전제한 의견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③항은 무조건적인 우선채용이 아니라 "채용규정에 의거"라는 표현을 담고 있어서, 사측의 의도에 따라 직접고용 계약직 동지들을 또다시 알아서 줄세우고 분열시키고자 하는 현장통제의 의미를 다분히 담고 있다고 판단되다. 따라서 '채용규정에 의거'라는 부분은 삭제되어야 하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채용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로 <해고조합원 현장 복귀>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식 제시안에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
셋째,<남아있는 사내하청 100여명 고용보장(직접고용)> 문제는 별도회의록 3항에서 "공장별 고용소위를 임단협 종료 후 개최한다"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100여명의 만료 기간이 7월 31일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임단협 종료 여부와 관계없이 시급히 다루어져야 할 절박한 문제이다.
넷째, 파견근로 2년 이상 근무자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회의록 2항에 "파견근로자 보호법 6조를 준수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사례가 많음으로 "파견근로 2년 이상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로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 또한 이미 5월 3일 신규채용에서 2년 이상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사례가 있는 만큼 현재 2년 이상이 된 김성권씨는 반드시 정규직으료 채용해야 한다.
다섯째, 지난 5월 3일 직접고용된 계약직 300여명에 대해서는 노조지부의 발표내용에 따르면 "2004년 신차종 투입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올 4월 12일 고용안정소위에 가졌던 "1년 후 정규직화 명문화"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하청노조는 32조 ④항 비정규직 처우개선 조항은 "의례적인 표현"이라 평가했지만, 단협 6조의 일반적 구속력 조항을 통해 차별을 철폐해 나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또한 직접고용된 계약직 300여명과 관련해 "2004년 신차종 투입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라고 되어있는 부분을 하청노조는 4월 12일 고용안정소위에 가졌던 "1년 후 정규직화 명문화"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나,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1년 계약직, 1년 연장후 04년 5월 정규직 채용"이었다.
7월 23일 임단협안은 수정없이 조합원 총투표로 가결된다.
6) 투쟁 4시기 : 3자 협의체 구성과 최종 합의에 따른 사내하청 투쟁의 마무리(8월∼11월 20일)
하청노조는 임단협 시기 중에 시민대책위가 발표한 사찰문건과 관련하여 ▷노동조합 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 ▷관련 책임자 공개 사과와 처벌 ▷관련 부서 폐지 ▷재발방지 약속 및 대책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방안으로 해고조합원 현장복귀를 요구하며, 하반기 투쟁의 방점을 사찰문건과 관련한 사회적, 정치적 압박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노동청 진정 및 조사 요구와 ▷총연맹 기자회견 조직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및 조사요구 ▷국회 국정감사 요구 등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이는 투쟁일정을 계획하였다. 9월 4일 노동조합 임시대의원대회는 본조 부위원장 등 집행부 4인과 대의원 5인으로 구성된 사찰문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하청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해 진상조사 활동에 들어가 10월 25일자 <함성>지에 사측이 불법사찰을 자행했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한편, 02임단투 별지회의록에 따라 8월 6일부터 사측의 김기철 공장장, 이기곤 노조 지부장, 고재한 사내하청노조 위원장 등 대표자와 실무자들이 모여 '사내하청노조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대표자 회의'를 갖는다. 사측은 첫 논의부터 해고조합원 "현장복귀를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잔여 100여명 정규직화'와 '2년 이상자 정규직화'는 빼자는 등 강경한 자세로 일관했다.
임단협 후반기부터 사찰문건 발표시기를 둘러싸고, 지부와 하청노조간 갈등이 증폭되었지만, 금속연맹 지역본부의 조절로 이후 사측과의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연맹·지부·하청노조 공동테이블을 구성하여 끈질긴 연대투쟁과 공동대응을 해나감으로써, 11월 20일 사측으로부터 극적인 최종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하청노조 전 투쟁기간 동안 지부는 하청노조와의 노조 대 노조로 연대하기로 한 원칙을 고수하고자 노력하였다. 물론 노조 설립 초기부터 하청노조와 관계가 원활한 것만은 아니었다. 여러 측면에서 지부-하청간 갈등을 겪어왔고, 연대의 위기를 맞이한 적도 있었다.
노조 지부는 하청노조가 설립되던 초창기, 조직의 다름으로 인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이나 노조 준비를 위한 사전 논의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연대투쟁을 못할 정도로 큰 문제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계급적 원칙 하에서 충분히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청노조가 초기 조직화 실패로 조직화 문제와 협상력을 지부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4.12 합의 등 지부의 협상 성과에 대해 논평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꼈다. 또한 불법파견 고발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후 책임문제 때문에 지부에 떠넘기려고 했던 것이나, 사찰문건 폭로 시기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지 않는 등 하청노조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금속연맹 지역본부의 중간조율로 이러한 갈등을 누그려뜨릴 수 있었고, 11. 20 최종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종합의의 내용은 ▷해고조합원 2인을 11월 25일자로 계약직으로 직접고용, ▷잔여 3인은 04년 5월 재논의, ▷쌍방간 고소고발 취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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