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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점
(1)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문제이다.
대공장에서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확대는 매우 다차원적이다. 자동차산업을 생각해보자. 90년 초반까지 인력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왔던 자동차업종은 97년 기아자동차 부도로 표현된 위기를 맞아 “불안정노동자들의 확대”라는 고용전략을 세운다.
완성업체에서는 조립 공정 이외의 사업부문에 비정규직을 투입하였고, 간접부분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조립라인으로 재배치하였다. 이 때에 사내하청의 확대, 파견용역업체를 이용한 인력수급이 이루어졌다. 부품업체들은 구조조정에 따른 벤더 구성 변화에 대응하고, 부품단가 인하 압력에 따라 정규직 축소와 무차별적 비정규직 확대가 시도되었다. 또한 변종변량 생산 시스템이나 생산설비 자동화에 따른 자동화 확장과 필요인원 축소로 인해 완성업체의 정규직이 축소되고, 만도기계나 현대모비스 등 부품업체에서는 변량 생산에 부품 공급을 맞추려면 노동력의 유연성이 높아야 하므로 비정규직을 확대한다. 판매제도의 변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특수고용직인 딜러로 전환되고, 경정비 업무가 분사화한다.
조선산업, 자동차산업, 철강산업 등 전통적인 거대 장치산업은 일반적으로 사내외에 대량의 하청 사업체를 계열화하여 통합적인 생산관리와 고용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조선업종은 자연감소되는 직영인원을 충원하지 않은 채 물량을 외주화하거나 특정 사업이나 부서를 분사시키는 방식으로 외부화(아웃소싱)을 진행함으로써 노동강도를 높이고, 비정규직을 확대한다.
이미 청소, 세탁, 식당, 시설, 운전, 안내, 주차 등 단순업무는 하청이 된지 오래이고, 하청을 도입할 때만 해도 일부 부서의 보조업무에 한해 시작되었던 것이 이제는 직영라인에서 함께 일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즉 하청이라고 해도 특정한 부서가 아니라, 원청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하청의 확대는 대부분 원청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는 “예전부터 있었던 어떤 비정규직들”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자본이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현장을 더욱 강하게 통제하고, 노동자들을 개별화하는 바로 그 구조조정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며, 구조조정의 가장 중심 축이기도 하다. 특히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정규직의 확대는 자본으로서는 유연한 노동력을 만들어내고,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강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우월감으로 노동자들을 개별화하고, 정규직을 축소시켜서 파업의 효과를 없애거나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1석3조의 훌륭한 구조조정 방안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본은 구조조정에서 그토록 비정규직을 확대하려고 혈안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조직화’에 국한하지 않는, ‘구조조정에 대한 총체적 대응일 수밖에 없다.
(2)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까지의 노동운동 관행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한다.
그동안 많은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고자 했다. 진주의 신호제지나 롯데호텔, 이랜드 노동조합 등에서 많은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벽에 부딪혀서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통신산업개발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려고 하루 전날 규약을 변경해서 복수노조 금지조항 때문에 노조의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게 만드는 악의적인 경우나, 구사대로 돌변한 캐리어 노동조합의 경우, 그리고 16.9%로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고용조정 시에 비정규직을 먼저 해고한다는 ‘고용안정협정서’에 서명한 현대자동차의 경우는 지극히 예외라고 치자. 그러나 많은 노동조합이 기업 내부적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분할시켜서 노동자들의 집단성을 파괴하는 자본의 전략에 조응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는 방식을 택해온 것도 사실 아닌가. 비정규직의 확대에 저항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현장에서의 차별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대단하다.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노동조합이 정규직들의 임금인상과 단협 체결에만 힘을 쏟고, 결과적으로 그 고통을 비정규직에게 자본이 전가시키도록 내버려둬왔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민주노조운동의 활동이 자본의 분리전략에 조응해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자 자체가 분할되는 상황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만 입각해있는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서의 대표성도 갖추지 못하는 소수 노동자들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조직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대표하도록 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정규직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문제를 함께 받아안고 가려고 하면 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게 된다.
노동조합이 민주노조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들의 보편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투쟁이 비록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것이지만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권리의 상승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민주노조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본은 민주노조의 전투성과 투쟁을 왜곡시키면서 책임을 전가시킬 노예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비정규직의 확대가 전제되어 있는, 그래서 우리의 전투적 투쟁 자체가 자칫 그 노동자들의 초과착취로 귀결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반드시 민주노조의 시야는 전체 노동자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이런 시각을 갖고 비정규직을 함께 조직하려고 하는 순간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민주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하려고 나설 때 오히려 노동조합에게 그것을 막으라고 요청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조합은 코너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 운동의 자업자득이다. 우리가 시야를 넓히고, 민주노조운동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고자 한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핑계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계획을 지금 당장 제출해야 한다.
(3)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는 ‘목적의식적인 전국조직화’라는 관점에 입각해야 한다.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가 구조조정 문제이자, 과거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반성적 평가에 입각해있다면, 이제 ‘목적의식적인 전국조직화’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운동 전반의 문제이고, 구조조정 문제이지만, 이 투쟁은 구조조정될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구조조정되어 열악한 처지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독립적인 주체로 서고 함께 구조조정에 대한 공동투쟁 전선을 만들 때에야 우리의 투쟁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화, 조직화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조직된 비정규직들을 살펴보았을 때 특수고용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제조업이거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며 작업 공정상 비정규직들이 함께 만나거나 동일한 업무에 귀속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조직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일수록 노동조합이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건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고용조정이 심해진다. 중소기업의 경우 비정규직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업무 자체의 독자성이 없는 경우가 많고, 차별도 대기업에 비해서 극심하지 않다. 대기업이라는 조건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입직 통로가 비정규직과 많이 다르다. 정규직은 직업훈련원을 거치거나 공공부문 정규직은 입사시험을 거치는데, 비정규직들의 경우 연고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94년 이후로 대부분의 대기업이 신입노동자들을 뽑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충원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분노와 불만은 상대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경우 핵심 노동자들과 그 외부의 노동자들을 차별하면서 노동관리를 하고 있는 기업들의 전략이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대기업들에서도 비정규직 운동이 확대될 수 있고, 이것은 기존 노동조합의 운동 양태에 대한 문제제기로 작용하게 될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는 자생적 투쟁에 의존해왔다. 물론 목적의식적인 활동가들이 들어가서 조직한 캐리어사내하청이나 기아사내하청과 같은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열악한 상황에 못 이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먼저 문제의식을 갖고 일어선 경우였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이라는 조건, 즉 구조적으로 노동기본권이 인정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하더라도 곧 어려움에 봉착하고, 그렇게 되면 다른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쉽게 다른 직업을 찾거나, 또는 자본에 의해 탄압을 받아 대규모 정리해고가 벌어지기 때문에 대중투쟁으로 쉽게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비정규직의 주체화나 조직화 없이 문제의식이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비정규직의 대중적 조직화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면, 이 문제를 푸는 길은 목적의식적이고 전국적인 조직화와 투쟁의 준비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 특히 사내하청 문제를 고민하려면 반드시 전국적 시야와 관점을 가져야 한다.
2. 투쟁과 조직에서 문제가 되는 점과 대응방향
(1) 법․제도적 문제들
가장 큰 문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실질적인 사용주는 사용업체인데도 불구하고, 그 업체를 대상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활동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고용사업주들의 경우 원청의 중간관리자 역할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청은 자신들이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에 나서지 않고, 고용주는 자신들은 중간관리자에 불과하다며 교섭을 해태하기 때문에 실질적 교섭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쉽게 해고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은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고용계약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내하청이나 용역업체의 경우 노동자들을 고용할 때 “업무용역을 수행하는 동안”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원청이 고용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곧 해고로 이어진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호제지의 사례처럼 정규직이 투쟁을 통해 단협에 “사내하청의 계약과 재계약에 관해서 노조와 합의한다”는 조항을 쟁취하거나, 투쟁의 힘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투쟁과 조직화의 힘으로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조직화를 고민해왔다. 첫 번째는 볼보건설기계코리아(아림) 비정규노조처럼 고도의 숙련 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1년동안 대체인력을 준비해서 1년 후 계약을 해지해버렸다. 두 번째는 모든 사내하청을 한꺼번에 조직해서 한꺼번에 계약해지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인데, 캐리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분적 직장폐쇄와 대체가 가능했기 때문에 여전히 계약해지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역 차원으로 조직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이것은 안정적 임단협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생긴다. 다만 노동조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임단협을 통해 노동자들의 생존을 안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러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에서 ‘규약변경’을 통해 정규직 노조로 포괄하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도 만만한 문제는 아니다. 정규직 노조에서 강력한 의지를 갖고 규약변경을 하려고 하더라도 조합원들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단협상의 배제조항으로 인해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한 단체협약상의 조합원 범위를 정하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특정 노동자의 노동3권을 향유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규약변경을 통해 기존 노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을 가입시켰다 하더라도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적용제외규정이 명시되는 한 실제 규약변경을 통한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과 투쟁에서 제도적 한계는 현실적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신호제지처럼 정규직 노조에서 죽을 힘을 다해 단협에서의 보호조항을 만들어놓지 못한다면 일방적 계약해지의 위협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돌파하고자 한다면 둘 중 하나밖에는 대안이 없다. 첫 번째, 민주노총에서 책임지고 사내하청을 조직하며, 만약 한 업체라도 노조활동을 이유로 폐업을 하거나 계약해지를 당한다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일방적 계약해지를 받아들이고, 다만 끝까지 끈질기게 투쟁해서 자본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결의이다. 삼양사 등 중소규모의 노동조합에서는 이것이 때로는 유효하기도 하다. 자본이 그만큼 세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이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계약해지를 감수하고, 끈질기고 힘들게 싸워 괴롭히겠다는 정신이 중요할 수도 있다. 세 번째도 있다. 그것은 법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세 번째 대안은 결국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2) 자본의 분할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극복방안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갖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다. 만약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투쟁을 통해 고용불안을 헤쳐나가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개인의 힘으로라도 살아남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만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비정규직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왜곡된 인식은 자본의 철저한 관리전략 속에서 재구성된다. 자본은 원청 노동자들에게 이런 왜곡된 우월의식을 심어주고, 일상적으로 차별을 강화하는 관리체계를 만들어간다. 그 전략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위험하고 힘든 일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활용하게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본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차별체계를 동원한다. 노동자들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차별을 당한다. 이름표, 작업복, 안전장비, 식당의 밥에서까지 말이다. 이렇게 차별을 하는 이유는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신들은 뭔가 비정규직과 다르다는 허위의식을 심어놓아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을 꺼리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로 자본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시에 하청 노동자들을 투입해서 파업을 방해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 사이에 불만이 쌓이도록 만든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이 파업을 할 때 자신들이 일을 못하게 되면 그것을 곧바로 생계의 어려움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정규직의 파업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고, 기회가 닿으면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분리전략은 파업투쟁 기간 동안 더욱 극명하게 효과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랜드나 신호제지, 롯데호텔과 같은 곳은 무엇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견고한 연대를 만들었는가? 첫 번째는 파업투쟁 과정에서이다. 동일한 파업을 겪으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돈독하게 만드는 것이다. 파업은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노동자들의 위계를 부수고, 노동자들의 단결의 위력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노동자계급의 학교이다. 파업과정에서 공동의 적에 함께 대항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로서 공동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이 속에서 자본이 유발한 위계들이 극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투쟁을 한다고 해서 갈등이 저절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건과 노조활동의 경험, 그리고 요구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간에 갈등이 오히려 증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과의 교섭 과정에서 ‘비정규직 때문에 우리 투쟁이 길어진다’는 생각이 퍼지기 쉽고, 비정규직들의 경우에도 정규직 노동조합이 교섭을 하면서 타결에 중점을 두다보면 비정규직들의 절박한 요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되어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집행부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투쟁 과정에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는다면 투쟁 자체가 바로 갈등의 극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지도부의 결의가 충천해도 조합원들의 조직화에 실패하면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 정규직 조합원들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는 일상의 차별을 깨뜨리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요구해서 몇 가지 개선 조치를 만드는 것은 일상의 차별을 깨는 투쟁에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 현장의 조합원들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주고, 이들이 함께 노력해서 차별을 깨도록 만들 때 자본의 쳐놓은 분리의 그물망이 결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철저한 태도를 갖고 정규직을 설득하고 비정규직을 조직해서 공동의 힘으로 구조조정을 분쇄하겠다는 결의를 갖는 것이다. 그럴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도 극복의 가능성이 생긴다.
(3) 조직 주체를 세우기 어려운 조건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자 해도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조직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하소연 한다. 그러나 왜 이런 상태가 만들어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극도의 차별로 인해 비정규직은 그 회사에 대한 애착을 갖지 못한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자신을 연계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비정규직들에게 모멸감을 심어주고, 정규직 노동조합에 불신을 갖게 만든다.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차별에 불만을 가질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을 배제하고 끼리끼리 모이는 사업장 문화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노조에 대해 그들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냉소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안전판으로 삼아왔던 과정은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동조합을 불신하도록 만드는 큰 요인이다. 또한 고용이 극도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비전을 갖고 자기 삶을 조직할 수 없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일반 정규직보다 더 큰 희생과 결의를 요구한다. 그리고 자본의 분리구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깊은 무력감에 젖게 만들어서 스스로를 투쟁으로 조직할 수 없도록 한다. 이런 요소들이 엉켜서 지금의 비정규직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가를 치떨리게 느끼게 된다.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화가 이러한 비정규직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투쟁을 통해 자기 삶의 비전을 찾을 수 있을 때에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노동자계급으로 조직하려고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데 있어서 비정규직들의 이런 특성에 대한 고려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비정규직들의 지극히 개인적 특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조직을 할만하면 이직을 해버리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부당한 대우를 당할 경우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 같은 소극적 대응을 하는 것을 어떻게 극복시켜서 적극적 대응으로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비정규직 문화에 대한 연구와 이와 접합된 다양한 조직양식의 개발로 이어져야 한다. 전통적인 방식의 조직화가 아니라, 다양한 소모임이나, 삶의 가치들을 확보할 수 있는 교육들을 끊임없이 배치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려한 독자적인 활동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4) 조직형식의 문제
계약직, 임시직, 촉탁직, 파트타이머와 같은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들과 공통의 사용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정규직 노조의 일반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된다. 직접고용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같은 작업장에서 섞여서 하기 때문에 직접 조합에 가입시키는 데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까지의 직접고용 비정규직 조직화 사례들이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업무차이가 거의 없는 유통, 서비스업 쪽이다 보니 조합원으로 그대로 가입시킨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고용계약상의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조직할 것인가에 있어 문제된다. 자회사 노동자를 포함하는 규약변경을 시도했으나 위법이라는 노동부의 지적을 받고 중단한 후지쯔 노조, 도급노동자를 포함하는 규약변경이 행정관청에서 반려 당한 이랜드노조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간접고용 노동자를 가입시키는 데에는 행정적 규제가 따른다. 인천제철 포항지부는 노동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지회규칙 개정만으로 하청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별노조로서의 이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랜드와 만도 문막지부 사례를 비교해보면 간접고용 조직화에 있어 어떤 형태가 좋은지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랜드는 원래 노조 체계가 지리적 위치, 업무의 특성을 고려한 분회 체계였다. 그 체계 속에서 물류센타의 계약직, 도급노동자들은 물류센타 업무의 특수성,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여 다른 분회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의 분회로 조직된 것이다. 반면 만도 문막지부는 이전에 분회가 설치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이 불안감을 가질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이랜드 노조는 별도노조로 조직하든 분회로 조직하든간에 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쟁취투쟁을 함께 계획하고 공유했으며 비정규직들의 파업 돌입과 최대한 시기를 맞추어 공동투쟁을 했다는 것이다. 만도 문막지부의 경우는 단지 분회라는 형식으로 고립시킨다는 불안감보다는 문막지부가 하청노동자 투쟁에 대한 의지와 계획이 없었고, 지금부터라도 투쟁 계획을 갖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점이었다. 문막지부는 하청노동자 부당해고를 철회시키는 투쟁엔 결합했으나 이를 넘어서 하청노동자 조직화라는 요구에 대해 계획을 내려하지 않았다. 이런 정규직 노조의 모습에 하청노동자는 실망하고 조직화를 포기한 것이다.
신호제지 사례를 보면 정규직 노조의 하청조직화 계획이 올바른 관점으로 뚜렷하게 잡혀있는 이상 조직형태에 대해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신호제지는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진주지역 제지산업노조를 결성하였다. 별도의 지역노조로 조직하였으나 신호제지노조는 장차 규약변경을 통하여 노조통합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신호제지 노조는 전국 15개 공장 노조의 협의체인 신호제지 노조 협의회를 강화한다는 계획의 일환으로서도 하청노조와의 통합을 구상하고 있다. 신호제지 노조가 하청노조의 강화에 함께 함으로써 하청노동자의 요구가 조직적으로 표출되고 하청업체 뿐만 아니라 실질사용업체에 대한 단체교섭력을 가질 수 있도록 공동투쟁을 강화한다면 별도의 노조라는 조직형태가 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5) 투쟁 요구의 문제
독자적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경우 초창기에는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해고의 사유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길거리에 쫓겨나서 고용안정을 요구하게 된다. 고용안정은 결국 ‘정규직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국 똑같은 고용불안정에 시달리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구’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요구’ 때문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계약해지 되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이지만, 그래서 ‘요구’는 대부분 ‘현장으로 돌아가자! 정규직화 하자!’는 것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수준에서 요구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끌어안고 함께 요구를 제출한다고 생각해보자. 단체교섭 과정에서 노조 요구안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갈등을 야기하기 쉽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노조의 요구는 자본에겐 매우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에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인다. 정규직화 요구를 받아들이면 이후의 구조조정 일정에 반대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규직화 요구를 포기할 것을, 비정규직 조직화를 포기할 것을 제안하고 유혹한다. 자본이 교섭과정에서 이렇게 대응할수록 ‘비정규직 때문에 우리의 투쟁이 길어진다’는 불만이 조합원들 사이에 퍼지기 쉽다.
그런데 우리의 궁극적 요구가 ‘정규직화’가 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은 단지 ‘요구’로만 투명하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선산업의 경우 산업적 특성 자체가 ‘노동력 외부화’에 기대고 있다. 경기변동에 따라 수요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수주가 안될 경우 언제라도 내보낼 수 있는 노동력을 준비하려고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조선산업이 이윤을 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조선산업 자본들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를 쟁취한다는 것은 한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서서 신자유주의 시대 정부의 정책, 그리고 산업 구조에 의거한 노동조건의 문제 등을 고려하여 이 요구를 현실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투쟁과 계획이 함께 제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요구가 현실적 조건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여, 이것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할 수 없는 조건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은 우리 운동 스스로가 자본의 분리전략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이다.
3. 과제 - 울산지역 사내하청 조직화를 위하여
(1) 계급적 연대의 정신을 새롭게 세우자.
그 첫 번째는 정규직 노동조합 또는 활동가들이 지금까지의 대공장 운동 관행을 반성하고, 새롭게 계급적 연대의 정신을 세우는 것이다. 계급적 연대의 정신을 세우려면 비정규직 투쟁을 지금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 비정규직투쟁은 쌓아놓은 보따리와 같아서 지금 당장 못하면 나중에 여유 있을 때 조금씩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한번 미뤄놓는 딱 그만큼 자본과 정권의 노동의 비정규직화 전략은 우리를 파고들어 내부를 분열시키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딱 그만큼 민주노조운동은 그러한 자본의 요구에 조응하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계급적 연대의 정신을 세우려면 정면돌파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가 전면화되면서 노동자대중은 단일한 대중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찢기고 위계화된 분열된 대중이다. 지금의 구조에서 계급적 집단성은 자본에 의해 유폐되었다. 조직된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은 언제부턴가 이러한 위계와 분열의 위 서열을 차지하게 되어버렸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정규직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이 단결과 연대를 외쳐도, 자신의 사업장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전체 노동자들로 단결의 눈을 돌리지 않는 이상 허구이다.
계급적 연대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피해 최소화 논리’를 뛰어넘어 계급적 신뢰를 회복하는 투쟁이다. 신자유주의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용인하는 순간, 그래서 당장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찾는 순간, 최소화된 피해의 내용은 구조조정의 승인이나 비정규직화에 대한 승인이 된다. 이것을 전제로 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고용의 일부를 인정받게 된다. 피해최소화 논리에 깔린 이러한 주고받기는 결국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는커녕 노동자계급의 본질적인 힘인 ‘노동의 집단성’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확대나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켜 본 정규직 노동자는 당연히 노동자전체의 계급적 연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노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노동자들에게도 ‘피해최소화 논리’가 내면화된다. 투쟁의 기반 자체가 파괴된다. 노동자계급에게 두려운 것은 조직이 탄압을 받아서 깨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개별화되어서 경쟁을 내면화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신뢰하지 않고 자본에게 빌붙게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의 투쟁에 의해 변질되고, 깨지는 현실의 역관계 그 자체이다.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우리는 공세적으로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을 조직할 준비를 해야 한다.
(2) 비정규직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주체로 세우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 투쟁에서 핵심은 몇몇 활동가들을 심어놓는데 있지 않다. 공공연하고 대중적인 조직화가 아니면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목표는 ‘노조’ 그 자체가 아니라, 대중적 조직화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시기에 대중적인 조직과 투쟁을 할 수 있으려면 일상 속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만나고,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고, 다양한 만남을 만드는 주체가 필요하다. 이 주체들이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정규직 활동가들의 문제의식만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조직되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활동가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투쟁해왔던 동지들의 재배치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다양한 비정규직 투쟁들이 있지만 막상 투쟁이 끝나고 나면 뿔뿔이 흩어지고, 활동가들의 흔적은 많이 남지 않는다. 이 동지들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계의 곤란, 전망에 대한 조직적 논의의 부재, 그리고 비정규직 투쟁의 장기화와 고통 등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이것을 함께 해결하겠다는 결의를 지역 차원에서라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활동가의 재배치도 가능하다. 비정규직 조직과 투쟁을 개인의 헌신성에만 맡겨둘 수는 없지 않은가?
두 번째로 현장에서 새로운 활동가들을 발굴해야 한다. 정규직이 투쟁을 대리해주는 것은 조직화의 관점에서 볼 때는 큰 의미가 없다. 비정규직을 직접적 투쟁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 세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규직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만나는 사내하청 동지들에 대해 탐색하고, 논의를 붙여야 하며, 정규직 노동조합의 각종 상담활동이나 고충처리 활동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주체를 발굴하기 위한 과정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고충처리의 성과를 조직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항상 정규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리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는 사내하청 투쟁을 조직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적 활동가들의 배치이다. 이 동지들을 통해서 우리는 조직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현장활동가들을 발굴하는 데에 좀더 속도를 낼 수 있다.
(3) 함께 모이고, 전국화하고, 기획하자!
대공장 사내하청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것을 몇몇 활동가들의 문제로만 국한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울산지역이 사내하청 조직과 투쟁의 교두보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지역 차원의 실질적 연대와 집중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내하청의 조직과 투쟁을 위해서는 정규직 활동가, 비정규직 활동가, 지역의 정치조직이나 노동단체, 그리고 민주노총의 4자 논의테이블이 만들어져서 공동의 투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내부에서 대중적으로 주체를 모아가는 비정규직 활동가,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정규직 활동가, 한 단사의 투쟁과 조직으로 국한하지 않도록 전체의 기획을 제출하고 투쟁을 만드는 민주노총, 그리고 비정규직 투쟁을 정치적으로 상승시키고, 사회적으로 문제제기 하는 정치조직이나 노동단체의 활동가들이 함께 만나서 기획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사내하청의 조직화도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것은 전국적 시야로 확대되어야 한다. 만약 사내하청 조직화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 전반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전략적인 부분이라면 이것은 단지 울산지역 내의 어떤 문제로 치부되지 않도록 확장해서 전국적이고 공세적인 조직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만나서 일정을 공유하고, 시기를 맞추자. 총연맹 차원에서 사내하청 조직화를 하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한 곳이라도 조직된 사내하청을 계약해지 하거나 폐업을 하면 총연맹 차원에서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전국적 조직화의 상, 함께 일정과 투쟁을 공유하는 상을 통해서 사내하청 조직의 생존률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매카니즘에 대한 공공연한 폭로와 이를 통한 여론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실태가 면밀하게 조사되고, 폭로의 내용이 준비되어야 한다. 사내하청 조직화는 전체 노동자들의 과제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나라 비정규직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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