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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03|2003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의 의미와 과제

:: 2003-03-25   조회: 3325

1. 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힘을 쏟아야 하는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을 받아들이고 함께 투쟁해서 정규직화를 쟁취했던 풀무원노동조합은 왜 비정규직 문제를 갖고 투쟁했냐는 질문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그들에게는 이 질문이 '왜 밥을 먹느냐'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매우 당위적인 것을 물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투쟁했고, 노동조합은 당연히 풀무원 전체 노동자들의 것이어야 했고, 또 투쟁이 끝난 이후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이 가면 안 되는데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당연히 정규직 투쟁을 한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의 전부이다. "당연하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당연한 명제를 되풀이해서 이야기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사업계획으로 세우는 데에도 씨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이라는 당연한 과제가 당연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은 무언가 우리 노동운동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왜 비정규직 투쟁에 힘을 쏟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은 "무엇이 우리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다음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보자.
첫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를 분리시키는 시각이 우리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가 일부 비정규직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조정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외주, 용역화, 아웃소싱으로 표현되는 간접고용화는 이미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으며, 이것은 직접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한다. 현대자동차는 완전고용협정서를 통해서 16.9%로 하청 비율을 제한했지만 하청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현장에서 자본의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여러 투쟁은 간접고용 확대를 저지하는 투쟁, 일자리 확대와 그를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수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노동조합 전체의 과제로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통 요구로 싸우게 된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 7,000명이 잘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정규직' 문제로 접근했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통신 구조조정의 일환이었고, "명예퇴직⇒계약직 해고⇒114분사⇒선로유지보수 분야 구조조정⇒사유화 완성"이라는 전체 그림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하나 당사자들만의 개별 대응이 되면서 결국 투쟁에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후퇴해온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강조한다. "비정규직 투쟁은 구조조정 투쟁이어야 한다."
둘째, 노동운동이 과거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비록 60만명의 조합원밖에 안되지만 여전히 '민주'노조였던 이유는, 자신의 투쟁이 곧 전체 민중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투적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은 사회를 변화시켰고,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분할하고 있다. 하청에 대한 단가인하 압력이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자본의 이윤창출에 큰 역할을 하며, 정규직 노동조합은 투쟁을 통해 그 이익을 나누고 있다. 투쟁하는 정규직과, 투쟁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진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은 예전과는 다르게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과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 노조를 여전히 '민주'노조로 만드는 힘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계급적 단결을 더 큰 과제로 두어야 승리할 수 있다.
셋째, 자본의 통제전략이 우리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자는 동일한 처지에 놓여있다. 신자유주의적 유연화가 노리는 바는 전체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 그리고 단결의 해체이다. 그런 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는 결코 다를 수 없다. 하지만 자본은 노동자들이 다른 이해관계를 갖도록 통제한다.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차별기제들이다. 돈을 아끼려고 작업복 색깔을 다르게 하거나, 식권을 다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각인하게 만들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무력감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허구적인 우월의식을 갖게 하려는 전략이다. 이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감정적으로도 단절시키고 효과적으로 분리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의 전략에 노출되어 있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더욱 힘들게 계급적으로 단결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정규직 투쟁을 한다는 것은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고 노동자들의 생존을 침탈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투쟁의 의미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는 '어떤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했다. 자본의 통제전략을 뚫고 계급적 단결이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세우면서 구조조정을 분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원이다. 바로 그 점에 비정규직 투쟁의 중요성이 있다.

2. 비정규직 조직·투쟁 과제

비정규직 투쟁의 범위는 매우 넓다. 비정규직 문제는 '조직화'만으로 해결되는 않는 다양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립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조합 인정과 권리 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경우가 있다. 2000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조직하고 투쟁했다. 그러나 투쟁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조직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전혀 인정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데에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아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노동조합을 유지할 수 없었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와 계약해지 때문에 고통당했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계약기간이 정해져있고, 단위사업장의 복수노조를 금지한 법 때문에 노동조합을 인정받을 수 없고, 기간이 지나면 해고되었다.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을 수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은 힘들게 벌어졌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고, 지금 자본과 정권에 의해 판판이 깨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바로 두 번째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보장'과 생존권을 위한 사회적 투쟁들이 배치되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사회단체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본부'를 만들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 요구를 만들고 서명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정권은 비정규직을 확산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그렇게 확산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제한하기 위해 각종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그것이 파견법의 확대와 계약직 계약기간의 연장, 준근로자성 등에 대한 논의이다. 이것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이 매우 절실하다. 그 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이나 저임금에 대한 투쟁도 배치된다.
세 번째는 정규직노조에서 조직하는 다양한 차별철폐 투쟁 및 정규직화 투쟁이다. 기아자동차노조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한 경험이 있고,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이번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중요한 요구로 제출하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협상에 의존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하면서 투쟁으로 만들어지는 성과들은 아직 많지 않다.
지금까지는 이런 영역 전반에 걸쳐 투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특히 비정규직 투쟁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되고,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자리잡으려면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조직을 만들어서 투쟁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조직하기도 어렵거니와 투쟁이 승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 힘으로 전체 비정규직 투쟁을 끌고 가기에 매우 어렵다. 또한 노동기본권 문제도 비정규직들이 그로기 상태가 된 점을 이용하여, 정권에서는 비정규직들에게 약간이라도 혜택을 줄 테니 비정규직을 확산하고 노동권을 제약하는 자본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상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다음의 세 가지 과제이다.

① 전략적으로 기획해서 조직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깨지는 일을 반복하게 해서는 안 된다. 깨지지 않는 조직을 만들려면 당연히 준비해야 한다. 투쟁의 파급력이 큰 곳, 그리고 조직화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을 주목해야 한다. 그곳은 아마도 사내하청이 될 것이다. 현장의 사내하청 동지들이 노동조합 만들기를 열망하고 있고, 이와 함께 하고자하는 정규직 동지들이 있다면 기획을 잘해서 성과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후 과제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자.

② 정규직에 대한 설득과, 노동조합 차원의 차별 철폐를 위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의 과제이며, 노동자들을 분리시키려는 어떤 통제방식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대투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미 많은 조합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리고 사측의 현장통제에 자신도 모르게 휘말려 비정규직에 대한 불편한 심기와 고용안전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나 일상활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투쟁은 바로 사측의 분할전략을 부수고, 노동자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대의원들이나 노조가 알아서 협상해서 비정규직들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이라면 이것 역시 사측의 분할전략에 조응하는 것일 뿐이다. 바로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으로 현장에서의 차별을 분쇄할 수 있어야 노동자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③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매우 힘든 시기이다. 워낙 힘든 상태에 있는 비정규노조들은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당장 너희들의 절박한 요구 일부를 들어줄테니 비정규직 확산과 노동기본권 박탈을 제도화하는 것에 동의해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이들이 힘겹게 혼자서 싸웠듯이 이 문제에 대한 판단도 온전히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파견법 확산, 준근로자성 문제, 계약직 계약기간 연장 등은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인데도 마치 이 노동자들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이 문제를 전체 노동운동의 문제로 다시 끌어안고 투쟁해야 한다. 우리 모두 예비 비정규노동자들로서 우리의 노동기본권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투쟁에 힘겹지만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정규직이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할 것 없이 민주노조운동의 실질적인 주체들의 몫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3. 사내하청 조직화와 투쟁 경험에서 나오는 교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도 함께 해야 하고, 현장에서부터 비정규직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비정규직 주체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비정규직 동지들이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고, 바로 그 동지들과 함께 현장의 투쟁을 새롭게 일구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어떻게 조직하고 싸워왔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1) 독립적으로 조직된 사내하청 노조에서 원청의 계약해지를 돌파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

지난 시기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생존을 위해 힘들게 투쟁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제도적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데, 고용업주들은 중간관리자에 지나지 않는데도 원청의 사용자성이 전혀 인정되지 않고, 부당노동행위에 노출되어 있다. 이미 삼호조선소 동지들이 경험했듯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사측은 각종 이유를 내세워서 계약을 해지해 업체를 통째로 날려버린다. 그러면 그 때부터 지난한 해고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쫓겨나는 순간 현장에 대한 개입력과 투쟁의 파급력이 적어지면서 투쟁은 장기화된다. 어쩌면 사내하청 조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일지 모른다.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첫 번째로 가장 숙련도가 높은 노동자들로 노동조합을 구성하면 쉽게 계약해지를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노동조합이나 대송텍 노동조합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노동조합에서는 사측이 1년 간 고용을 유지해주면서 대체인력을 준비하고, 1년이 지난 후 계약을 해지했다. 대송텍 노동조합은 사측에서 대형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1주일만에 정규직 중심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물론 엄청나게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사고의 위험도 높았지만 사측에게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을 깨는 일이었다.
두 번째 방안은 많은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한꺼번에 계약을 해지할 경우 업무의 공백이 생기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노조 건설 후 대부분의 사내하청을 조직함으로써 조직력으로 원청의 계약해지를 돌파하고자 했다. 실제 투쟁의 힘으로 노동조합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사측의 부분적 직장폐쇄와 계약해지, 그리고 정규직과의 공조 파기로 결국 투쟁 주체들은 길거리로 쫓겨나고 아직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법적인 대응을 중심으로 하는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냄으로써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원청의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전략이었다. SK의 사내하청인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조합이 이런 방식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지노위에서 승소한 여세는 지속되지 않고, 법원에서는 불법행위의 당사자인 원청에는 책임을 물리지 않고, 불법파견의 피해자인 하청노동자 보호의무를 방기함으로써 철저하게 자본의 편을 들어주었다.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과 캐리어 노동자들 일부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네 번째로 가장 소극적인 방법인데, 원청을 명기하지 않고,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투쟁을 하고, 이를 통해 노동조합의 안정성을 먼저 보장받는 것이다. 그러나 원청업체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LG화학의 사내하청인 '남성노동조합'은 남성과 교섭을 통해 부당해고를 철회시키고 임금과 단협을 쟁취했지만 LG화학의 일방적 계약해지를 막을 수 없었고, 결국 노조는 무력화되었다.
다섯 번째로 이러저러한 방법을 다 사용하기 힘든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힘든 투쟁을 해야 했다. 대상식품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00일이 넘도록 천막농성을 하고, 비록 사내하청으로의 재입사이지만 결국 타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상식품을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의 효과를 어느 정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원청을 괴롭히면서 질긴 투쟁을 해야 작은 성과라도 남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위의 여러 가지 방법이 쓸모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독자적으로 조직된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는 가능한 방안을 다 모색해야 한다. 위의 방안들이 실패한 것은 방법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투쟁의 의미를 이해하고 뒷받침할만한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독립적으로 조직해서 투쟁하고자 했을 때 그것을 지원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을 현실성 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2)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 가능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

이 점의 중요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에서 원청의 역할도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정규직이 조직해야 살아남는다'든가, '정규직은 정신차려라'는 등의 단순화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만드는 것은 단지 정규직만의 몫이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을 준비하는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도 단지 자신들만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SK 원청노조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과 함께 했고, 그래서 이후 공동투쟁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투쟁의 한 주체로서 정규직을 끌어안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정규직 활동가들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자본은 정규직에게 허구적인 우월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분쇄하면서 원청 노동조합의 힘마저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규직 활동가들은 사내하청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전체 노동자를 위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정규직에서 힘있는 공동투쟁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그것 역시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탄압,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뚫고 나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규직에서 힘있는 공동투쟁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매우 지난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직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를 지원하고 힘있는 공동투쟁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화를 위한 제도적 조건들을 마련하는 데에 힘을 기울인다. 금속노조 포항지부 INI스틸 지회의 경우 지회 규칙을 변경하여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측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한 정면돌파를 감행했다. 간부들이 힘들게 선전전을 하고, 교육을 하고, 현장을 돌면서 그 의미를 선동했기 때문에 지회 규칙 변경도 가능했다. 물론 그 뒤에 사내하청 주체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래도 매우 의미있는 노력이었다. 신호제지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해 계약해지 하는 것을 막으려고 "협력업체에 대한 재계약시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할 것"을 단협에 명문화하기도 했다.
이 외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캐리어노동조합도 사내하청 노조와 함께 현장을 돌면서 조직화를 지원했고, 기아자동차 노동조합도 조직화에 대해 지원했다. 대우조선 현장조직 동지들은 부당하게 해고당한 사내하청 동지들과 출근투쟁을 다시 하면서 동지애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측의 분열공작에 맞서 정규직들을 설득하고 공동투쟁의 의미와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가 시작되면 사측에서는 반드시 정규직들이 이 투쟁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일상적인 차별전략의 영향으로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분리의식을 갖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차별의식을 강화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타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럴 때 활동가들은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정규직들은 활동가들이나 노조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비정규직과 선을 긋도록 요구하고, 그러면서 활동가나 노동조합 간부들은 고립된다. 그리고 힘든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캐리어 노동조합은 이럴 때 비정규직을 배신해서 금속노조로부터 제명당했고,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은 힘들지만 원칙을 지켜서 나름대로 정규직화 성과를 남겼다. 그러므로 일상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공동투쟁해야 함을 알리고 설득하는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은 매우 어려운 선택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3) 조직방식에 대해 고민하자.

사내하청을 조직하려면 정규직을 책임주체로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조직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원청 노조에서 규약을 변경하여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동일한 조합원이 되어서 함께 투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겠다는 결의가 없다면 사실 다른 조직방식을 고민한다 하더라도 별 의미 없을 수 있다. 이 과정은 투쟁시기와 결합하는 것이 좋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할을 넘어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극명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랜드 노동조합도 규약을 변경한 후 공동으로 파업투쟁을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리선을 없애고 공동투쟁의 결의를 만들었다. 그러나 규약변경도 매우 힘든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이미 노동자들의 분할통치전략을 고수하려는 자본과 계급적 단결을 지키려는 노동자들 사이의 투쟁과정이다.
그렇지만 힘겹게 규약을 변경하더라도 조합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하겠다는 결의가 함께 조직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입을 하려 하지 않는다. 만도기계 문막 지부에서도 이미 가입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정규직에서 함께 끌어안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탈퇴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규직들의 지속적 고민과 공동투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함께 조직되었을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립적 요구가 임단협 과정에서 제출되어야 하는데, 이 문제 때문에 다른 요구안들이 제대로 타결이 되지 않거나 아니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규직의 요구에 묻히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국은 규약변경이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문제를 돌파하겠다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투쟁의지가 관건인 것이다.
현실에서 규약변경이 어렵다고 해서 사내하청 조직화를 마냥 미루어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역노조로 조직하는 방안도 고민하기는 한다. 몇몇 특징적인 지역에서는 이런 방안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이동통로가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사내하청에 대한 통제도 지역차원에서 진행되는 곳에서는 '지역사내하청 노조'가 의미있는 실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지역은 거제나 광양 정도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단위사업장 차원의 조직화 계획은 항상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정규직이 함께 하더라도 원청의 탄압에 견뎌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전국적이고 공세적인 조직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물론 기본 조직단위들은 대기업 단위사업장이 되겠지만, 이런 조직화도 한꺼번에 여러 조직을 세우면서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일반화할 수 있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단위사업장이 한꺼번에 조직되려면 굳이 단위사업장으로 시야를 국한하지 않고, 예를 들어 현재 규약상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금속노조 사내하청지부'처럼 전국 사내하청 노조를 만들고, 일제히 몇 개의 사업장에서 사내하청 지회를 건설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금속노조'라는 단일한 노조의 이름으로 정규직 노동조합이 지지와 지원, 그리고 공동투쟁 의지를 표명하게 하고, 이 노동조합 지회들의 생존을 위해 금속노조 차원의 총력투쟁을 할 수 있다면 의미있는 생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이후 온전한 의미의 산별노조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을 넘어 하나의 지역에서는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는 모습으로 변화할 것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4. 조직화의 기초를 다지자.

지금까지 비정규직 투쟁은 여러 영역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체를 조직하고, 투쟁의 대오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나서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려면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조직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조직화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기보다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 활동가들이 해야 할 역할이 많다는 점을 우리는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확인했다.
다시 하번 사내하청 조직화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우리의 과제를 정리해보자.
첫 번째 정규직 노동조합에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조직되었을 때 계약해지를 막기 위한 단협조항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선전을 해야 한다. 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선전, 그리고 투쟁의 장을 여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두 번째로, 정규직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스스로의 조직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키고, 사내하청 활동가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상적인 차별철폐투쟁을 함으로써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들의 왜곡된 인식을 바꾸고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 번째로 상급단체에서는 사내하청을 조직하기 위한 전체 계획을 가져야 하며, 이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내하청 활동가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조직화에 대한 기획을 전국 차원에서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사내하청 문제에 관심갖고 공동투쟁 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폭로하고, 사내하청의 건강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차별실태 등 사내하청 문제를 사회화하기 위한 전국적 투쟁기획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사내하청 조직화가 이후 비정규직 조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 이 투쟁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고, 투쟁의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해 전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불법파견임에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폭로와 투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원청의 매카니즘에 대한 폭로와 투쟁 등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투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노동 사회단체들과의 긴밀한 연대가 필요하다.
즉 사내하청 조직화 문제는 사내하청 활동가, 정규직 활동가, 정규직 노조, 상급단체, 노동사회 단체 전체의 긴밀한 연대 속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조직되고 기획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투쟁의 파급력과 투쟁의 힘이 가장 강할 수 있고, 이렇게 해서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생존률을 높이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을 일반화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투쟁의 힘으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도 힘을 얻어가며, 그래야 비정규직 투쟁의 실질적 주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비정규직 투쟁 주체가 자리잡아야, 비정규직 투쟁이 민주노조운동에서도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고, 고용불안감을 극복하고 공동투쟁을 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정규직들에게 심을 수 있으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제도화하는 정권에 맞선 투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자생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힘든 투쟁을 전개해왔던 이들의 몫이었다. 이제 우리는 목적의식적 조직 기획 속에서 그 투쟁을 이어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조직화로만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비정규직 투쟁의 여러 영역, 즉 끊임없이 단위사업장에서 정규직화하거나, 현재 투쟁하는 동지들을 지원하거나,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을 위한 전체 투쟁을 만들고 동참하거나, 일상적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현장에서 투쟁하는 모든 일들은 지속되어야 하고, 또 그것이 조직화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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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대우조선진상조사보고서 2000/10/11
  :: [자료] 사내하청노동자투쟁과조직화를위한토론회 2000/09/25
  :: [자료] 보도자료_대우조선사내하청 2000/09/07

 
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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